세월호 7시간 행적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고려해달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스스로도 여러 의혹에 대해 “여성 대통령이 아니라면 그런 식으로 비하받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던, 멋진 페미니즘 구호가 이처럼 공개적으로 모욕당하긴 쉽지 않은 일이다.
계간지 ‘말과활’은 봄호에 ‘최초의, 박근혜를 사유하다’ 특집을 기획물로 내놨다. 이진옥(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허윤(문학연구가), 김주희(여성학 연구자), 시우(문화연구자) 4명의 여성 필자가 글을 실었다.
되돌이켜보면 열혈 페미니스트임을 자임한 한 영화잡지 편집장은 2002년에 이미 “박근혜가 출마하면 대통령으로 찍겠다”고 선언해 화제를 모았다. 생물학적 여성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 그 자체가 진보라는 이유에서다. 10년 뒤인 2012년 대선에 나선 박근혜는 이를 활용했다. 그 해 10월 박근혜는 ‘대한민국 여성혁명 시대 선포식’에 참석해 “여성대통령이 탄생한 것이 가장 큰 변화이자 정치쇄신”이라고 주장했다. 그 해 대선 결과도 매한가지였다. 이진옥은 2012년 대선 투표행위에 대한 여러 연구결과들을 보여주는데, 분명히 ‘박근혜 대통령’의 탄생에 여성들의 지지가 큰 역할을 했고, 여성들이 박근혜를 지지한 이유에는 여성이라는 정체성 또한 크게 작용했다.
이에 대한 필자 4인의 반론은 “여성이기 때문에 모성정치를 할 수 있다는 상상력은 지나치게 안일하다”는 데 모아진다. 김주희는 이를 “모성 사기극”이라고까지 표현한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좀 허전하다. ‘박근혜’를 두고 4인의 여성 필자가 “박근혜는 여성을 준비하지 않았고, 고로 박근혜의 실패가 여성의 실패는 아니다”라고 쓴다는 건 뻔하다. 관심은 그 지점에서 페미니즘은 과연 무엇을 했으며, 할 것이냐다.
이진옥은 이렇게 털어놓는다. 박근혜가 유력 대선후보로 부각됐을 때,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페미니스트들마저도 “박근혜를 둘러싼 스캔들을 끊임없이 논의에서 제외”시켰고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는 박근혜 분석에서 제외”했으며 “아버지인 박정희, 그 남성 개인의 셀 수 없는 성추문, 아니 성폭력의 일화들은 안전한 페미니스트 텍스트 비평에서조차 자취를 감추”었다. 김주희 역시 “박근혜가 여성 대통령으로 준비된 적도 없지만 여성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비판 역시 준비되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써뒀다.
시우는 더 파고 든다. 시각에 따라서는 ‘남성중심적 권력 구도에서 대통령이란 최고 권력의 쟁취가 페미니즘의 진전일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가능하다. 그는 “여성 대통령론과 페미니스트 대통령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페미니즘에서 찾을 수 있는지 진지하게” 묻고 싶었으나 이에 대한 “생산적 논쟁과 비판적 개입이 실종”됐다고 토로했다. 페미니즘의 지향이 대체 무엇이어야 하는가. ‘박근혜’는 페미니즘의 고민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놨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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