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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가에 배신당했습니다” 전 재산 털어 ‘세월호 트럭’ 만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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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가에 배신당했습니다” 전 재산 털어 ‘세월호 트럭’ 만든 이유

입력
2017.04.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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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삶의 터전, 탁상공론 보상으로 일상 재기 어려워

평생 잊을 수 없는 침몰 당시의 기억,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지난 18일 충남 당진에서 다시 만난 양인석 씨가 그의 '세월호 트럭' 위에 앉아 있다. 사진 조두현 기자
지난 18일 충남 당진에서 다시 만난 양인석 씨가 그의 '세월호 트럭' 위에 앉아 있다. 사진 조두현 기자

세월호가 목포신항으로 들어오던 지난달 31일, 진도 팽목항에서 노란 트럭 한 대가 눈에 띄었다. 차 곳곳엔 노란 리본과 함께 ‘Remember 0416’이란 글씨가 크게 붙어 있었다. 누가 봐도 세월호의 참상을 알리고자 고안된 디자인이었다.

트럭의 주인은 세월호 생존자 양인석 씨(52세, 인천)였다. 그는 트레일러에 미수습자 가족의 임시 거처를 실어 목포신항으로 옮겨 주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그를 붙잡고 트럭의 사연을 묻고 싶었으나 서로 경황이 없어 다음날을 기약했다.

세월호 참사 3주기가 지나고 지난 18일 충남 당진에서 양인석 씨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드디어 노란 트럭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조두현(이하 조): ‘세월호 트럭’은 어떻게 해서 만들게 됐나요?

양인석(이하 양):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정치인이 그러더군요. 3년 해 먹었으면 됐다고요? 이걸 어떻게 잊습니까? 전 제가 죽어야 잊을 수 있습니다. 세월호가 가라앉았을 때 사람들을 많이 못 구해서 안타깝고 미안합니다. 나만 살았다는 죄책감도 들고요. 사람들이 지나다 저 트럭을 보면서 세월호를 한 번 더 생각해주고, 대한민국이 좀 더 안전한 국가가 되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지난달 31일 양인석 씨가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의 임시거처를 목포신항으로 옮기고 있다. 사진 조두현 기자
지난달 31일 양인석 씨가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의 임시거처를 목포신항으로 옮기고 있다. 사진 조두현 기자

조: 트럭 자체도 꽤 독특해 보입니다.

양: 중고로 구입한 켄워스(Kenworth)의 낡은 트랙터입니다. 미국에선 흔히 볼 수 있는데, 국내에선 생소하죠. 사람들 눈길 끌기에 좋아 ‘세월호 트럭’으로 딱 맞다고 생각했어요. 지난해 10월 즈음 로베드(저상 트레일러)를 제작해 달았습니다. 기억의 상징인 노란색으로 도색하고 여기저기를 꾸몄지요. 로베드 위에 올릴 광고 구조물도 나무 기둥을 이어 직접 만들었습니다. 배선 작업도 해놔서 불도 들어옵니다. 세월호 관련 행사나 집회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도로로 나가요. 달리는 것만으로 큰 홍보가 됩니다. 주위에서 응원도 많이 해줍니다.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럭’이라고.

조: 원래 트럭 운전사가 주업이었나요?

양: 그럼요.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도 배에 제 트럭과 화물(음식물 쓰레기 처리기)을 싣고 제주도로 향하던 중이었어요. 2010년 연말에 볼보 트럭에서 구입한 700마력짜리 고출력 트랙터였습니다. 차 기본 가격만 2억2,000만원이에요. 거기에 아웃트리거와 견인 고리 등 고가의 특수 장치를 달아 총 3억9,500만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보상금은 1억8,000만원이 나왔어요. 딱 트랙터의 중고 시세만 따져서 나온 거죠. 이 돈으론 아무것도 못 해요.

저상 트레일러 위에서 메시지를 전하는 '0416 Remember' 광고 구조물
저상 트레일러 위에서 메시지를 전하는 '0416 Remember' 광고 구조물

조: 그럼 보상금으로 ‘세월호 트럭’을 마련하신 건가요?

양: 아닙니다. ‘세월호 트럭’은 보상금이랑 상관없이 제 전 재산을 털어서 만든 겁니다. 번호판도 영업용이 아닙니다. 보상금으론 가라앉은 차의 남은 할부금과 외상값, 기름값을 갚았죠. 그러고 나니 아무것도 안 남더군요. 말 그대로 재기 불능이에요. 제 삶의 터전은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았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제대로 된 조사와 보상을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습니다. 배가 바닷속에 있으니 정확한 손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다행히 이제 세월호가 인양됐으니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조사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되기 전날 찍은 양인석 씨의 볼보 트럭.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를 싣고 제주도로 향하던 중이었는데, 당시 배에 한 대라도 더 태우기 위해 트럭의 양 옆은 고정돼 있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 양인석 제공
세월호가 침몰되기 전날 찍은 양인석 씨의 볼보 트럭.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를 싣고 제주도로 향하던 중이었는데, 당시 배에 한 대라도 더 태우기 위해 트럭의 양 옆은 고정돼 있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 양인석 제공

조: 괜찮다면, 세월호 침몰 당시를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요?

양: (잠시 망설이다) 그때 전 3층에 있었습니다. 갑자기 배가 한쪽으로 기울었어요.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기울어진 쪽으로 떨어지면서 철문에 부딪혔습니다. 안내 방송에선 가만히 있으라고만 하더군요. 하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어요. 가만히 있다간 죽겠다 싶었지요. 선체가 기울면서 쏟아진 구명조끼 하나를 주어서 입었습니다. 그리고 위를 향해 있는 문으로 올라가다 다시 떨어졌습니다. 그때 엔진이 꺼지고 전기도 나갔어요. 암흑천지가 되자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됐습니다. 여기저기서 공포의 비명이 울려 퍼졌어요. ‘죽음’이 눈앞에 보였어요. 이렇게 죽기 싫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필사적으로 올라갔죠. 뭘 잡고 올라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운 좋게도 전 배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에서 탈출 중인 양인석 씨. 사진 양인석 제공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에서 탈출 중인 양인석 씨. 사진 양인석 제공

조: 배 밖의 상황은 어땠나요?

양: 충분히 다 살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구조 작업이 늦어지자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이 나서서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왔어요. 고무호스 등 손에 잡히는 건 모두 동원했죠. 저도 40분 정도 사람들 구조를 도왔습니다. 바구니를 매단 헬기가 왔는데 그것도 바람에 날아갈까 무서웠어요. 바닷속으로 뛰어내릴까도 몇 번 고민했죠. 그러다 마지막 헬기를 타고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무사히 서거차도에 내리고 보니까 같이 세월호에 탑승했던 동료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선을 타고 특공대와 같이 다시 침몰 현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미 뱃머리만 보인 상태였죠. 정말 그때의 절망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동료는 무사히 구출돼 동거차도에 내렸다는 연락을 받고 안심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구출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좌절감에 빠졌죠.

조: ...

양: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정신과 치료 5년이란 진단이 나왔습니다. 5년이 뭡니까? 몸 어디가 찢어지고 부러지면 낫기라도 하죠. 이건 평생 갑니다. 저뿐만이 아니에요. 다른 생존자, 유가족, 미수습자 가족 모두 제정신으로 살기 어려울 겁니다. 국가에 배신당한 기분이에요. 왜 구조도, 보상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 겁니까? 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지 않는 겁니까? 그러니까 스스로 할 수밖에요. 저런 트럭이라도 만들어서 제발 안전에 신경 쓰자고 국민에게 알릴 수밖에요.

지난 1월에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 집회에 '세월호 트럭'을 끌고 참가한 양인석 씨. 당시 아무 이유 없이 경찰로부터 감시를 당했다고 한다. 사진 양인석 제공
지난 1월에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 집회에 '세월호 트럭'을 끌고 참가한 양인석 씨. 당시 아무 이유 없이 경찰로부터 감시를 당했다고 한다. 사진 양인석 제공

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세월호가 인양됐습니다.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양: 지금과 다르지 않습니다. 힘닿는 데까지 저 트럭을 몰고 다니며 세월호를 알릴 겁니다. 그리고 배에 실렸던 화물에 대한 조사와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을 촉구할 겁니다. 우리는 세월호를 절대로 잊으면 안 됩니다.

당진=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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