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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마라톤 261번, 세상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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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마라톤 261번, 세상을 바꾸다

입력
2017.04.1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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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녀의 영역이던 풀코스 귀고리 달고

1967년 보스턴 마라톤 당당히 출전

끝내 피투성이 된 발로 완주 성공

70세에 같은 번호 달고 다시 결승선에

50년 전인 1967년 여성 최초로 보스턴 마라톤에 공식 출전했다가 대회 감독관에게 저지당했던 여자 마라토너 캐서린 스위처가 18일 당시 참가번호 ‘261’번을 그대로 달고 올해 보스턴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보스턴=AP연합뉴스
50년 전인 1967년 여성 최초로 보스턴 마라톤에 공식 출전했다가 대회 감독관에게 저지당했던 여자 마라토너 캐서린 스위처가 18일 당시 참가번호 ‘261’번을 그대로 달고 올해 보스턴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보스턴=AP연합뉴스

2017년의 보스턴에는 여자라는 이유로 들어야 했던 ‘당장 꺼지라’는 고함도, 번호표를 낚아채려는 위협도 없었다. 스무 살이었던 대학생은 70세의 여성운동가이자 작가가 돼 출발선에 다시 섰다. 1967년 보스턴마라톤을 여성 최초로 ‘공식’ 완주한 캐서린 스위처(70ㆍ미국)가 18일(한국시간) 출전 50주년을 기념해 제121회 보스턴마라톤을 다시 완주했다.

캐서린 스위처는 최초의 공식 여성 마라토너다. 불과 33년 전까지 여성은 ▲다리가 굵어지고 ▲가슴에 털이 날 수 있으며 ▲자궁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이유로 마라톤 출전이 허락되지 않았다. 스위처는 1966년 출발선 근처 덤불에 숨어 있다가 다른 주자들 틈에 섞여 마라톤에 참가한 여성 로베르타 깁(75ㆍ미국)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듬해 보스턴마라톤 출전을 결심한다. 귀걸이를 하고 립스틱을 짙게 바른 채 출발선에 선 스위처에게 주위에서 립스틱을 지우는 게 어떠냐고 조언했지만 스위처는 “절대 지우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스위처가 6km구간을 통과할 즈음, ‘여자’가 뛰고 있다는 사실이 대회 조직위원회에 알려졌다. 대회 감독관 겸 조직위원장 조크 샘플이 살기를 띤 얼굴로 스위처에게 달려들어 어깨를 낚아챘다. 그는 “번호표를 내놓고 내 레이스에서 꺼져”라고 소리쳤다. 그녀와 동행한 코치 어니 브릭스와 애인 톰 밀러가 감독관을 저지해 마침내 스위처는 4시간 20분의 기록으로 피투성이가 된 발과 함께 완주에 성공한다.

1967년 보스톤마라톤 대회에 여성으로 출전했다가 대회 감독관에게 저지당하는 배번 261번을 단 캐서린 스위처. 보스턴 헤럴드 캡처
1967년 보스톤마라톤 대회에 여성으로 출전했다가 대회 감독관에게 저지당하는 배번 261번을 단 캐서린 스위처. 보스턴 헤럴드 캡처

스위처의 ‘도발’에 면죄부를 준 건, 한 장의 사진이었다. 주자에게 달려드는 감독관과 이를 피해 달리는 여성의 사진은 ‘여성의 달릴 자유’에 대한 공론화 계기가 됐다. 결국 여론의 지지를 받아 철옹성 같았던 풀코스 출전 금녀의 문이 활짝 열렸다. 4년 후 1971년 제2회 뉴욕마라톤에서 세계 최초로 여성 참가가 허용됐다. 이듬해에는 보스턴마라톤도 여성 참가를 허용했고, 1974년에는 여자부를 신설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84년 마침내 LA올림픽에서 여자마라톤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그리고 사진은 미국 라이프(Life)지에서 ‘세상을 바꾼 100장의 사진’ 중 하나로 선정됐다.

스위처가 올해 보스턴마라톤 조직위로부터 받은 참가번호 261번은 50년 전과 같은 번호였다. 261번은 스위처에게 ‘공식 여성 마라토너’의 자격을 부여한 역사적인 번호다. 1967년 당시 보스턴마라톤 참가 신청서에는 성별을 적는 칸 자체가 없었다. 남성들만 출전하는 것이 당연시 됐기에 성별 표기의 의미가 없었던 것. 스위처는 ‘KV Switzer’라는 중성적 이름으로 등록해 정상적으로 번호표를 받을 수 있었다. 훗날 스위처는 대회 등록명에 대해 “조직위원회를 오도하려는 의도가 아닌 대학 논문에 서명하는 습관이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발급받은 그녀의 번호표 261번은 지금까지 여성운동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쓰인다. 보스턴마라톤 조직위원회는 올해 스위처의 배번 26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캐서린 스위처가 18일 제121회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50년 전, 1967년 대회 당시와 같은 배번을 달고 출전해 결승선을 통과한 후 기뻐하고 있다. 보스턴=AP연합뉴스
캐서린 스위처가 18일 제121회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50년 전, 1967년 대회 당시와 같은 배번을 달고 출전해 결승선을 통과한 후 기뻐하고 있다. 보스턴=AP연합뉴스

올해 보스턴마라톤에서 스위처는 4시간 44분 31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1975년에 세운 개인 최고기록(2시간 51분 37초)에 비해 시간은 느려졌다. 그러나 대회 내내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며 보스턴마라톤을 온전히 즐긴 70세의 마라토너에게 기록은 큰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올해 3만 명의 보스턴마라톤 참가 선수 중 1만3,702명(46%)이 여자라는 사실이다. 대회 관계자의 눈에 띌까 전전긍긍했던 1967년의 홉킨턴(보스턴마라톤 출발지점)은 50년 후 참가자 절반에 육박하는 여성들의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스위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여자다. 50년 전 보스턴에서의 일은 내 삶을 완전히 바꿔놨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오늘의 레이스는 지난 50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다음 50년은 분명히 더 나아져 있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일흔 살의 마라토너이자 여성운동가는 올해 11월에 열리는 뉴욕마라톤에도 참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오수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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