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저압력 사회를 만들자

입력
2017.04.18 14:15
0 0

우리나라 출산율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은 머지않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고령화가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다. 이 두려운 역사적 결과의 전개를 앞에 두고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04년 저출산·고령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이 법에 의거하여 5년 단위로 기본계획을 수립해 왔으며, 현재 제3차 기본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더구나 정부는 지난 10년 간 저출산 대책으로 무려 80조원의 재정을 쏟아 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하는 합계 출산율은 2003년 1.18명에서 2016년 1.17명으로 오히려 낮아져 2015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거의 꼴찌에 가까운 220위를 보이고 있다. 출산율뿐만이 아니라 결혼 문제도 심각하다.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50세 미혼율은 2015년 3.8%에서 2025년 10.5%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저출산 문제의 원인이 여성의 탓으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며, 근본원인은 청년들의 취업 애로와 높은 주거비용, 여성의 출산 후 경력단절 문제, 일과 육아를 양립시키기 어려운 여건 등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도 이와 거의 같다.

근본적인 원인은 저성장시대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활은 여전히 고압력 사회의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로 지난 10년 간 도시가계의 실질소득은 15% 증가한 반면에 아파트 매매가격은 32%, 전세가격은 70% 상승하여 내 집 마련은 더 어려워져 가고 있다. 한편 여성이 일과 양육을 양립시킬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은 결과로 기혼여성의 경력단절 경험율은 44%에 달한다.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취업을 한 경우에도 낮은 소득 증가와 실직의 위협 등 결혼과 출산을 둘러 싼 경제적 압력은 오히려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결과로 젊은 세대들이 ‘헬조선’이라고 아우성치는 것을 나무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성장시대가 불가피한 만큼, 저성장시대에 상응하는 경제ㆍ사회적 환경과 가치체계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해답이다. 한 마디로 저압력 사회로 이행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근로시간을 가지고 있는 조직문화, 아이들에게 높은 성적를 압박하는 가정 문화, 부와 권력에 편향된 가치관 등 저성장시대의 삶을 압박하는 고압력들을 대폭 완화하고 삶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압력 사회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대선 후보들도 근로시간 단축을 비롯한, 국민 삶의 질적 향상을 기하기 위한 공약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기존의 대증적 정책으로는 재정을 낭비할 뿐이다. 다음 정부는 저압력 사회로의 전환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하고 다원적이고 유기적인 정책조합을 모색하기 바란다. 저압력 사회로 전환하는 데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기업은 조직문화 혁신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과 유연 근무제 도입 등으로 직원들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 월급 인상보다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현재의 고압력 사회를 저압력 사회로 전환하는 것은 시대적 과제다. 정부와 기업과 가정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이 시대적 과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젊은 세대가 더 지치고 질식하기 전에 저압력 사회로 전환하여 이 땅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시급하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