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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살렸지만 구조조정 원칙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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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살렸지만 구조조정 원칙은 무너졌다

입력
2017.04.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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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더 이상 추가 지원 없다”

불과 5개월 만에 말 뒤집어

산은, 회사채 사실상 지급 보증

‘원리금 상환’ 안 좋은 선례 만들어

국민연금 노후자금 손실 우려도

대우조선해양이 우여곡절 끝에 채무재조정을 통한 회생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과 자본시장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더 이상 추가 지원은 없다”는 말을 5개월만에 뒤집었고, 산업은행은 회사채에 사실상 지급 보증을 해 주는 안 좋은 선례까지 만들었다. 국민연금도 특정 기업을 위해 국민 노후 자금의 손실을 감수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정부가 대우조선 추가 지원 방안을 내 놓은 것은 회사채 만기 상환 한 달 전인 지난달 23일이었다. 이는 지난 2015년 10월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집어 넣을 당시 “추가 지원은 절대 없을 것”이란 공언을 스스로 번복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조8,000억원의 대우조선 자본 확충에 나설 때도 더 이상의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결국 2015년부터 이번 대책까지 대우조선에 지원될 자금은 무려 14조원으로 불어났다. 정부는 대우조선을 파산시키는 데 들어갈 비용(59조원)이 더 크고 실물 경제에 미칠 타격이 막대하다는 논리로 책임을 피해가고 있다. 그러나 백웅기 상명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후 정부의 예상이 빗나가 대우조선이 다시 어려워진다면 앞으로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한 달 안에 출자 전환을 포함한 모든 채무재조정을 끝낼 것을 무리하게 압박한 것에 대해서도 시장의 반발을 불렀다. 정부는 초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을 선보이며 채무재조정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P플랜으로 들어가 강제적인 빚 감축에 나설 수 밖에 없다고 겁박했다. 그러나 대우조선 사채권자들이 채무재조정안을 받아들일지 말지 고민하는 데에 1개월은 너무 촉박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결국 자본시장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까지 훼손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채권자들이 막판까지 꿈쩍도 하지 않자 산은은 사실상 ‘회사채 원리금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이행확약서를 제출했다. P플랜을 막기 위한 정부의 고육지책이었지만 기본적으로 회사채 투자는 투자자가 그 위험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시장 원리와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앞으로 구조조정 때마다 원리금 상환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들이 빗발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산은이 사채권자를 설득하기 위해 사실상 보증을 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무조건 보장이 아니어서 보증과는 다르다”고 해명했다.

지난 11일 정부의 대우조선 채무조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던 국민연금도 결국 일주일도 안 돼 스스로 이를 번복했다. 국민연금은 당시 “2,000만 국민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위해 기금을 관리해야 하는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결국 채무재조정에 찬성했다. 17일 국민연금에는 “강제로 걷은 국민 혈세를 왜 고액 연봉을 받는 부실 기업에 마음대로 쏟아 붓느냐”는 항의 전화들이 빗발쳤다.

물론 정부의 이번 구조조정 방식이 내용이나 형식 측면에서 진일보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없잖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전문가는 “청와대 서별관회의를 통해 지원금액 등을 정한 지난 2015년과 달리 이번엔 투명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P플랜을 도입해 연착륙을 유도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구조조정의 원칙이 또 다시 훼손되며 결국 ‘대마불사’만 재확인됐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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