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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비와 위암 이겨내고 이룬 트럭 운전사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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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비와 위암 이겨내고 이룬 트럭 운전사의 꿈

입력
2017.04.1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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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동안 한쪽 팔로 트럭 운전, 지난해엔 연비왕까지 거머쥐어

자율주행 트럭 반기지 않지만 시대에 따라 사고방식 바꿔야 롱런

지난 15일 경기도 화성에서 열린 '볼보 트럭 연비왕 대회'에서 만난 지난해 우승자 이상인 씨. 그의 왼팔은 움직이지 않지만, 그는 트럭 운전사의 꿈을 이루고 연비왕까지 거머쥐었다. 사진 조두현 기자
지난 15일 경기도 화성에서 열린 '볼보 트럭 연비왕 대회'에서 만난 지난해 우승자 이상인 씨. 그의 왼팔은 움직이지 않지만, 그는 트럭 운전사의 꿈을 이루고 연비왕까지 거머쥐었다. 사진 조두현 기자

트럭 운전사 이상인 씨(42세)는 18년 전 교통사고로 왼팔이 마비됐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품고 있던 트럭 운전사의 꿈은 놓지 않았다. 몇 해 전엔 걸린 위암도 그의 길을 막을 수 없었다. 이 씨는 현재 회사에서 매출 1위를 달리고 있고, 지난해엔 볼보 트럭이 개최한 세계 연비왕 대회에서 한국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지난 15일 경기도 화성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성능연구소에서 열린 ‘2017 볼보 트럭 연비왕 대회’에서 시운전에 나선 이상인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 속엔 꿈과 도전, 행복이 가득했다. 이 씨에게 트럭은 단순히 화물을 운반하는 이동 수단이 아니라 삶의 공간이고 여행의 동반자다.

조두현(이하 조): 팔은 어쩌다 그렇게 됐습니까?

이상인(이하 이): 교통사고였습니다. 머리를 심하게 다쳐 한 달간 혼수상태에 빠졌었죠.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납치된 줄 알고 탈출도 했었습니다(웃음). 왜냐하면, 기억이 전혀 안 났거든요. 아직도 사고 이후 약 두 달간의 기억은 흐릿합니다. 왼팔을 움직이는 신경도 끊어져서 전혀 움직일 수 없어요. 기억과 팔은 잃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큰 사고에서 이렇게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조: 그럼 트럭 운전은 포기했던 건가요?

이: 그럴 리가요. 전 일곱 살 때부터 트럭 운전사를 꿈꿨습니다. 병역도 방위산업체에서 3년 동안 12톤 트럭을 몰면서 마쳤습니다. 병원에서 나와서 적성검사를 다시 받았습니다. 자동변속기가 달린 1톤 트럭을 사서 새벽에 신문을 배달했지요. 신문 배달은 시간이 생명인데, 사실 그때 주위에서 불안한 눈빛을 보내긴 했어요. 그래서 한 달을 인턴처럼 일하고 한 번이라도 제시간에 배달을 못 하면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한 번의 실수 없이 모두 시간에 맞춰 배달했습니다. 그런데 수입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종목을 우유로 바꾸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조: 왜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 2010년에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1기라서 수술만 하면 나을 수 있었죠. 그래도 위의 70%를 잘라냈어요. 우유 대리점을 접고 치료와 재활에 집중했죠. 다시 기운을 차려 부산에 우유 대리점을 열었지만, 뭔가 허전했어요. 그때 우연히 장애인도 1종 대형·특수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접했습니다(도로교통법시행규칙 제54조 별표 20에 따르면 엄지손가락 이외의 두 손가락이 없거나 이와 같은 기능 장애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한 신체장애인은 제1종 대형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 전국에서 서울 강남 운전면허 시험장에서만 가능하더군요. 그 정보를 듣자마자 바로 다음 날 서울로 올라가서 트레일러 면허에 도전했습니다. 두 번 만에 땄습니다. 바로 우유 대리점을 접고 중고 트랙터를 샀죠. 그때 산 게 바로 볼보 80주년 기념 모델로 나왔던 500마력짜리 FH 모델이었습니다.

조: 볼보 트럭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이: 수입 트럭 중에서 서비스망이 가장 넓습니다. 저는 주로 부산 신항에서 중부내륙지역을 오가는데, 남쪽에만 6개의 서비스센터가 있어요. 한 번은 경북 왜관에서 긴급 출동을 불렀는데,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센터에 부품 담당자와 정비사 등 세 명이 불을 켜놓고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대기 없이 바로 고쳤습니다. 트럭은 수리 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운송을 못 하니 손해가 큽니다. 부품 조달이 일반 승용차에 비해 빨라야 하는 이유죠. 그리고 볼보 트럭엔 MDPS(Motor Driven Power Steering System)라고 전자식 스티어링 시스템이 들어가 있습니다. 스티어링이 아주 부드러워요. 덕분에 한쪽 팔로도 무리 없이 운전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도 제 눈엔 트럭 중에서 가장 예쁘고, 승차감도 만족합니다.

지난해 열린 ‘볼보 트럭 연비왕 대회’에서 이상인 씨(가운데)는 다른 참가자들보다 최대 51% 높은 차이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사진 볼보트럭코리아 제공
지난해 열린 ‘볼보 트럭 연비왕 대회’에서 이상인 씨(가운데)는 다른 참가자들보다 최대 51% 높은 차이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사진 볼보트럭코리아 제공

조: 지난해엔 한국을 대표해 볼보 트럭 연비왕 대회에도 나갔다고 들었습니다.

이: 제 인생에서 가장 꿈 같은 시간이었지요. 연비왕 대회와 관련된 모든 기사와 자료를 스크랩해서 매일 반복해서 읽고 숙지했어요. 처음 부산·경남 대회에 나간다고 할 때 주위에서 일 안 하고 그런 데 뭐하러 나가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 태평양 대회에서 2위를 하고 세계 대회 결승전에 나갔을 때부터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죠. 스웨덴 고텐버그에서 열린 세계 대회에선 아깝게 예선 5위에 머물렀지만, 다녀와서 저의 실수를 면밀하게 분석해서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아내와 아들이 자랑스러워해서 뿌듯합니다.

조: 트럭을 포기하고 싶었던 때는 없었나요?

이: 전혀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75세까지 운전대를 잡을 생각입니다. 얼마 전에 74세 할아버지 트럭 운전사를 만났는데, 제 롤모델이 돼버렸습니다. 머릿기름을 발라 깔끔하게 빗어 넘긴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어요. 그분은 새벽에 일어나서 딱 오후 한두 시까지만 트럭을 운행하고 오후엔 게이트볼이나 등산 등 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저녁엔 할머니와 식사를 하고 일찍 주무신대요. 그리고 다음 날 새벽에 일찍 운행에 나선다고 해요. 저도 그렇게 늙어가고 싶습니다.

조: 하루에 운전은 얼마나 하나요?

이: 한 달에 대략 5,000~5,300ℓ의 연료를 씁니다. 하루 왕복 거리만 650㎞에 달하죠. 24시간 중 22시간은 차에 있어요. 차 안에 냉장고, 전자레인지, 무시동 히터와 에어컨 등이 마련돼 있지요. 위암 수술받고 제때에 식사와 영양 공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위암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습니다. 음식과 체력 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거든요. 그리고 쉬는 날에도 차를 살핍니다. 명절처럼 며칠씩 쉴 땐 괜히 시동도 걸어보고요. 차가 잘 있나 보는 거죠. 저는 지금 컨테이너를 나르고 있지만, 운송이라기보다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럭을 타고 어딘가로 가는 것 자체가 좋아요. 사무실에도 이야기해 뒀습니다. 별 이유 없이 이틀 이상 운송 일정이 없으면 그만두라는 뜻으로 알겠다고(웃음).

조: 그런데 곧 자율주행 트럭이 나온다고 하던데요.

이: 사실 전 반기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큰 걱정은 안 합니다. 금방 될 것 같으면서 막상 끝까지 현실화되기 어려운 게 자율주행입니다. 고속도로에서 크루징하는 거라면 모를까, 국도나 도심, 공장 같은 데선 결국 사람의 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연비왕 대회에 나가서 깨달은 게 있다면 어느 부분에선 차에게 모두 믿고 맡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겁니다. 옛날 사고방식을 버려야 해요. 차가 못하는 것만 사람이 하고, 나머진 차에게 알아서 맡기는 시대가 왔습니다. 미래에는 차가 더 많은 것을 알아서 하겠지요?

이상인 씨는 20년 전에 비해 트럭 운전사들의 운전이 많이 신사적으로 바뀌었다고 했지만 아직 3차로 주행 등 개선할 점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상인 씨는 20년 전에 비해 트럭 운전사들의 운전이 많이 신사적으로 바뀌었다고 했지만 아직 3차로 주행 등 개선할 점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조: 마지막으로 졸음운전 안 하는 팁 좀 알려주세요.

이: 화물 운송은 시간이 생명이라 졸린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무조건 세울 수 없어요. 일단 깨야죠. 전 주로 노래를 크게 틀고 음정 박자 무시하고 따라 부릅니다. 껌을 씹기도 하고요. 요즘엔 다른 운전사들과 그룹 통화를 해요. 서로 두런두런 이야기 주고받으며 운전하는 거죠. 그것도 안 먹히면 세웁니다. 트럭이든 승용차든 졸음운전은 절대 안 됩니다.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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