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우리나라 정부에 재정 지출을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진 않았지만 한국 정부가 돈을 풀어 미국 상품을 더 사야 한다는 압박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1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14일(현지시간) ‘주요 교역 대상국의 환율정책 보고서’에서 “(한국은)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정책수단(all policy levers)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난해 10월 환율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한국이 단기 재정 확대를 포함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권고한 데 이어 다시 한번 재정 확대를 촉구한 것이다. 미 재무부는 6개월에 한 번씩 교역 대상국의 외환시장 정책을 평가한 보고서를 작성한 후 이를 의회에 제출한다.
미 재무부는 전체 보고서상(27페이지) 우리나라와 관련된 2페이지 분량(3,400자)의 서술중 5분의1을 재정 정책 확대 권고에 할애했다. 먼저 국제통화기금(IMF)의 자료를 인용해 우리나라의 재정 정책이 ‘소극적’이라는 점을 비판했다. 보고서는 “IMF는 한국 정부가 발표한 그간 몇 차례 재정 보강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0.2%, 올해 0.5%의 ‘재정 긴축’ 효과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고 꼬집었다. 보고서는 이어 “한국은행은 지난 2014년 8월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25%까지 내렸다”며 적극적인 통화 정책에 비해 재정은 소극적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에 따라 경기회복을 위해 보다 확장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미 재무부의 결론이다. 보고서는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0% 수준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경기 보완을 위한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며 “내수 부문의 수요를 창출하고 수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라도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미국이 우리나라에 재정지출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내수를 확충해 미국산 상품과 서비스를 더 구매하라는 메시지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 재정지출 확대를 권고하는 외부 목소리는 처음이 아니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말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6%로 낮추며 성장률 하향의 배경으로 한국 정부의 긴축적 재정기조를 들었다. IMF도 작년 11월 “한국은 사회복지 지출이 GDP의 10%로, OECD 평균(22%)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재정지출 확대를 주문했다.
한편 미 재무부는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 중국, 일본, 독일, 스위스, 대만 등 6개 국가의 ‘환율 관찰대상국’ 지위를 유지했다. 본격적인 통상 제재가 가해지는 ‘심층 분석 대상국’이나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된 나라는 없었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 “당선되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이를 사실상 백지화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을 놔두고 한국 등 다른 나라를 우선적으로 문제 삼을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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