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항모전단 급파 등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16일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전날 북한이 태양절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무기들을 대거 등장시키는 동안 플로리다 휴양지 마라라고로 떠난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미사일이 발사될 때까지도 골프를 즐기는 등 평상시와 다름 없는 주말을 보냈을 뿐이다. 북한을 향해 공격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경고음을 울렸던 트위터도 잠잠하다. 이에 북한의 이번 도발이 핵실험 등 미국 정부가 설정한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이 긴장수위를 끌어올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 아래 침묵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날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미국이 칼빈슨호에 이어 항모 니미츠호도 서태평양 해역으로 파견하고, 주일미군 기지에서 스텔스 전투기 폭탄탑재 훈련을 하는 등 한반도 주변 전략자산의 움직임이 부산하기 때문에 미국의 군사대응 의지가 잦아들었다고 성급히 판단할 수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AP통신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으로부터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실패 결과를 보고 받았다. 그러나 특별한 언급은 없었다. 숀 스파이서 대변인을 통한 백악관 공식 언급도 나오지 않았다. AP는 “트럼프 대통령이 평소와는 다르게(uncharacteristically) 침묵을 지켰다”고 했으며, 워싱턴포스트(WP)는 “북한과 중국을 격렬하게 몰아치던 트럼프 대통령의 침묵도 그렇거니와, 백악관마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침묵에 미 언론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북한의 도발 행위에는 공개적으로 맞대응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트럼프 정권 내부에 존재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최근 북한 미사일 도발에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더 이상 언급할 게 없다”는 짤막한 성명을 내밀었던 걸 사례로 들었다. 북한의 노림수에 넘어가 불필요하게 긴장 수준을 높이지 않겠다는 게 트럼프 참모들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도발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할 상황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격무에 지친 참모들에게 부활절(16일) 휴가를 주기 위해 수행원 규모를 최소화해 마라라고로 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신문은 “주말 동안 대통령 곁에는 캐스린 맥팔랜드 국가안전보장회의 부보좌관과 백악관 실무직원 3명만이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스파이서 대변인을 포함해 백악관 참모 대부분은 부활절 휴가를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트럼프와 참모들이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17일 이후 미국의 강경 대응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워싱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반응이 이례적으로 보이지만, 충분히 준비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일성 생일(15일)을 전후해 북한 도발이 예견되는 상황인데도 안보담당 참모들을 휴가 보내고 침묵을 지키는 건 중국의 행동을 기다리고 있어서라는 것이다. 정상회담과 전화통화를 통해 시진핑(習近平) 주석에게 적극적 행동을 충분히 요청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핵심 공약인 ‘환율조작국’ 문제에서 양보하는 등 성의까지 보인 만큼 공은 중국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돕기로 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서 “중국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우리와 협력하는데 왜 내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이라고 부르겠느냐?”면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구체적 대응은 결국 중국 대응에 달린 셈이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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