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의 과잉진료가
행복하게 죽을 권리를 빼앗아
인간다운 삶을 바란다면
품위 있는 죽음을 예비해야…
그 전에 치열한 오늘을 살자
우리 사회에서 ‘죽음’이란 말은 금기(taboo)의 언어이다. ‘죽음’하고 발화되는 순간, 불행과 음울이 우리 주변을 감싸온다고 여긴다. 그래서일까. 그 어느 누구도 선뜻 죽음 쪽으로 말머리를 돌리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죽음이 과연 금기 영역에만 머물러야 하는지. 알고 보면 죽음은 일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다. 태어난 무엇인가는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종말을 맞는다. 자연법칙이다. 꺼려한다고 해서 이를 비켜갈 수는 없다. 삶이란 어떤 면에서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물음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니 제대로 살고자 한다면, 어떤 죽음을 맞을 것인지 그 마지막까지도 예비하고 있어야 한다. 철학적으로도 그렇겠지만 실제적으로도 죽음은 삶의 중요한 지표이다.
내년 2월, 웰다잉법이 시작된다
이렇게 마음 다잡은 뒤 죽음을 다룬 우리의 책들을 찾아보았으나, 딱히 눈에 띄는 저술이 드물었다. 이 같은 책들의 부재에서 나는 ‘죽음’이 얼마나 강력하게 우리 생활과 문화에 금줄을 치고 있는지 역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2018년 2월이면 ‘웰다잉(Well-dying)법’이라 불리우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실행된다. 임종환자에 대해서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률이므로 죽음에 대한 관념을 달리해야 하는 시대가 열린다. 자기 삶의 마지막 숨결을 병원이나 의사에게 맡기지 않아도 되는 존엄사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까지 웰다잉법이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금기에 묶인 죽음이 우리의 생활 속으로 불쑥 튀어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 확산은 둔하다. 웰다잉법이 시행되는 초창기에는 상당한 혼란과 불안이 야기될 수도 있겠다 싶다. 지금부터라도 관계 당국에서는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홍보와 적극적인 안내를 통해 웰다잉법의 시행을 전국적으로 알려야 하지 않을까.
존엄한 죽음
최철주 지음ㆍ메디치미디어 발행
248쪽ㆍ1만5,000원
아름답게 떠날 권리
김종운 지음ㆍ유리창 발행
284쪽ㆍ1만5,000원
아미쿠스 모르티스
리 호이나키 지음ㆍ부희령 옮김
삶창 발행ㆍ456쪽ㆍ2만2,000원
이런 면에서 최철주의 ‘존엄한 죽음’(메디치)과 김종운의 ‘아름답게 떠날 권리’(유리창)는 상당히 뜻 깊은 책으로 다가왔다. 그렇지 않은가. 존엄한 죽음이므로 누구든 아름답게 떠날 권리가 있다. 이 책들은 바로 이 점을 직시하며 이렇게 말한다. 인간다운 삶을 바란다면, 품위 있는 죽음을 예비하라고. 약간의 온도차는 있지만, 이 책들의 지은이는 현대의학의 과잉치료가 사람에게서 행복하게 죽을 권리를 빼앗았다고 인식한다. 틀리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일 경우, 그가 택한 죽음의 방식을 존중해줌이 마땅하다. 심지어 그가 고통스런 연명을 선택할 때조차, 의사는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본다. 현대의료시스템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나는 의사들의 저와 같은 태도야말로 어진 의료행위이며 참다운 인간애의 발로라고 여긴다.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문제의식
그런데 읽다 보니 죽음에 관한 논지의 결이 서로 달랐다. 게다가 ‘아름답게 떠날 권리’에서 주창하는 ‘영혼론’이 너무 낯설어서 내 관심은 자연히 ‘존엄한 죽음’ 쪽으로 기울었다. 최철주가 자기의 경험을 토대로 기술한, 삶의 마무리에서 나누는 위로와 교감은 다감했고 죽음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자세하고 차분한 설명 등은 친절했다.
아내와 딸을 먼저 보낸 최철주 개인의 절절한 그리움과 아픔이 곳곳에 박힌 이 책은 여러모로 감동적이다. 그가 말기환자인 아내에게 들려주는 치유의 시를 읽다가 나는 잠시 책을 덮었다. 울컥했다. 입원해 있을 때 나도 시를 읽으며 스스로 몸과 맘이 맑아지는 치유의 힘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살짝 아쉽다. 사람들이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당위가 설득을 앞지르고 있어서 책이 마치 계몽서처럼 읽히는 것이다.
죽음이란 도저한 삶
이와 같은 아쉬움을 보완할 수 있는 책이 리 호이나키의 ‘아미쿠스 모르티스’(삶창)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현대의학의 기계적인 의료시스템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이반 일리치가 말하는, ‘아미쿠스 모르티스(amicus mortis)’를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아미쿠스 모르티스’는 “죽음을 함께 맞이하는 친구”라는 뜻인데, 바로 이 말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 품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죽음을 말한다고 해서 죽음만을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인지를 이 책은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 죽음은 그러한 치열한 삶의 종착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죽음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도저한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내가 죽음을 다룬 책들을 소개하고자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대로 죽고 싶다면 그 전에 먼저 치열한 오늘을 살자는 것이다. 물론,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포스럽다. 극복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걸 공포로만 받아들이는 한 삶은 언제나 위태롭게 비틀거린다. 생의 종착지로서의 죽음을 비참하게 닫고 싶지 않은 나는, 오늘을 복기해본다. 아직 헐겁다. 더 투철해져야겠다.
정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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