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이 딸아이 생일이에요, 그날이 기일이 돼버렸으니 참 얄궂은 운명이죠.”
고(故) 김초원씨는 스물여섯 번째 생일인 4월 16일, 운명을 달리했다. 가장 탈출하기 쉬웠던 5층 객실에 머물렀지만, 배가 기울자 곧장 4층으로 내려가 제자들의 구명조끼를 일일이 챙기고 겁먹지 않고 무사히 탈출할 수 있도록 다독이느라 정작 자신은 빠져 나오지 못한 탓이다. 18일 새벽 주검으로 발견된 김씨는 제자들이 선물로 준 귀고리와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초원씨 아버지 김성욱(57)씨는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딸아이 생일마다 안산분향소를 찾고, 납골공원을 찾는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네요. 원래 생일케이크를 불면서 축하하던 날이었는데”라며 울먹였다.
아버지는 아직 딸을 보내지 못했다. “딸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딸이 머물렀던 곳을 지날 때면 더욱 생생하게 떠오른다”는 게 김성욱씨의 말이다. 보고 있으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단다. 팔짱을 꼭 끼고 산책을 나가는 게 뿌듯하고, 행복했다. 서태지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 문구점 주인에게 따로 부탁해 사진을 구할 정도로 끔찍이 아꼈다. 대학에 다닐 땐 서툰 실력으로 콘서트 티켓도 직접 예매했다. “콘서트에 다녀온 초원이가 ‘아빠! 서태지가 나를 보면서 춤을 췄어’라면서 들떠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해요. 고맙다면서 편지도 써줬는데, 지갑에 넣어 다니면서 어찌나 자주 봤던지 나중엔 너덜너덜해서 못 읽을 지경까지 됐어요.”
속 한 번 썩인 적이 없었다. 누구보다 부모 생각이 깊은 아이였다. “고등학생 때 독서실에서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했는데, 꼭 ‘아빠 절대 데리러 오지마’라고 큰소리를 쳐요, 아빠 피곤할 까봐. ‘아빠 난 얼굴이 무기니까 혼자 와도 돼, 하나도 안 무서워’ 그래요, 딸이. 그렇게 속이 깊은 애였어요.”
때론 친구 같은 딸이었다. 심야영화도 자주 보러 갔고, 주말엔 등산도 다녔다. 김씨는 “단원고 부임하면서부턴 주말에도 학생들이랑 놀러 다니느라 바쁘더라고요. 내심 얼마나 섭섭했는지 몰라요”라며 웃었다.
기간제교사는 교육공무원법에서 공무원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초원씨는 순직인정을 받지 못했다. 끝까지 배에 남아 제자들을 챙겼던 딸의 명예회복을 위해 아버지는 3년 째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 사이 김씨의 성대는 완전히 녹아 내렸고, 결국 지난달 인공성대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초원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꼭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열심히 해보려고요. 그래야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초원이를 만났을 때, ‘아빠가 너 명예회복 해주고 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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