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 인쇄한 활자로 보기 어렵고
출처ㆍ소장 경위도 분명치 않아
고려시대 활자일 가능성은 인정
직지, 最古 금속활자 위상 재확인
2010년 9월 첫 공개된 이후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논란을 일으켰던 ‘증도가자’가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문화재계와 학계를 뜨거운 논쟁의 장으로 만들었던 증도가자 진위논란이 7년 만에 일단 종지부를 찍게 됐다.
문화재청은 13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간담회를 열고 “이날 열린 문화재위원회 동산문화재분과 회의에서 고려금속활자(증도가자) 101점의 보물 지정 안건은 부결됐다”고 밝혔다. 2015년 6월 구성된 ‘고려금속활자 지정조사단’의 조사결과 증도가자 금속활자들이 보물로 지정할 만한 문화재적 가치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증도가자는 보물로 지정된 13세기 불교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증도가)’를 찍는 데 사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금속활자다. 김종춘 서울 다보성고미술관 대표와 남권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가 2010년 증도가자 실물을 공개한 후 2011년 국가문화재지정 신청을 냈다. 증도가자가 보물로 인정되면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1377)보다 138년 앞선 유물이 돼 큰 주목을 받았다.
문화재위원회는 심의 대상이었던 증도가자가 서체비교, 주조 및 조판 등 과학적 조사결과 ‘증도가’를 인쇄한 활자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위작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그것이 진품을 뜻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공개된 바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고려금속활자 서체비교 연구 결과 보고서’가 근거가 됐다. 윤곽선 분포에 대한 수학적 계산 기법, 딥러닝 기법, 글자 중첩 비교법 등 3가지 방법으로 교차 검증한 결과 금속활자인 증도가자와 목판본인 ‘증도가’의 서체가 글자 모양, 각도, 획의 굵기 등에서 유사도가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조선시대 금속활자 ‘임진자’(1772)와 임진자로 찍은 책 복각본의 유사도를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101점의 증도가자 활자에 대한 조판 검증에서 ‘증도가’를 찍어냈다고 보기에 활자 크기가 너무 크다는 결과도 받아들였다. 학계 일각에서는 목판 수축으로 인해 인쇄본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문화재청은 오히려 목판 번각본 글자가 더 큰 경우도 있었다고 반박했다.
문화재청은 활자에 묻은 먹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은 적정하게 진행된 것으로 인정하면서도 먹의 연대측정 결과로 활자 연대를 추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 한국과 일본의 연구기관 3곳의 조사에서 증도가자 활자가 11세기~13세기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문화재청은 “활자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일반적인 청동 유물에서 나타나는 데이터와 다르지 않았고 활자의 내부 구조와 표면 조사에서도 특이점은 나오지 않았다”면서도 “활자의 출토 당시 고고학적 증거에 대한 의문이 있고, 보존환경의 신뢰성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문화재청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활자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인정했다. 황권순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장은 “문화재 지정 신청자와 협의를 거쳐 금속활자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청동수반ㆍ초두를 제출 받아 분석하는 방법도 강구하겠다”며 “지금까지 확인된 증거 자료 이외에 또 다른 분석기술이 발전하면 고려금속활자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남권희 교수 측은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탄소연대측정 결과 해당 활자는 고려시대에 주조된 것으로 증명됐다”며 “증도가자라는 명칭으로 지정 신청한 활자그룹을 한정하는 게 문제라면 고려 금속활자로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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