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월 영국에서 개최되는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영국선수가 우승을 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한 ‘윔블던 효과’는 육상계로 보면 ‘보스턴 효과’로 불릴 만 하다. 1897년 첫 출발총성을 울린 보스턴 마라톤은 메이저 대회 중의 메이저대회로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미국인들에게는 ‘남의 잔치’였던 까닭이다. 1983년 그렉 마이어(62)가 보스턴마라톤에서 우승한 이후 33년 동안 미국 태생 마라토너들의 우승은 없었다. 2014년 멥 케플레지기(42)가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그 역시도 아프리카 에리트레아에서 귀화한 미국인이다.
미국의 육상스타 갈렌 럽(31)이 닷새 앞으로 다가온 제121회 보스턴마라톤에서 미국 태생 마라토너의 우승을 준비하고 있다. 생애 첫 자신의 메이저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는 럽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며 미국 언론은 그의 컨디션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럽은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육상 1만m에서 깜짝 은메달을 딴 선수로 알려져 있다. 럽은 당시 영국 육상의 간판스타 모 파라(34)의 훈련 파트너로 대회에 참가해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빌리 밀스(79)가 금메달을 딴 후 48년 만에 나온 남자 1만m 미국인 메달리스트이자, 10위 안에 든 이들 중 유일하게 동아프리카 출생이 아닌 선수였다.
깜짝 스타가 된 갈렌 럽의 마라톤 도전은 이로부터 4년 후였다. 2016년 2월 LA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마라톤 대표선발전이 럽이 마라톤 풀코스를 뛴 최초의 대회였다. 불혹의 마라토너 멥 케플리지기를 누르고 가장 빨리 결승 테이프를 끊은 럽은 그 해 8월 본선인 리우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10분 5초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땄다. 리우올림픽 1만m를 5위로 통과한 지, 단 8일만에 42.195km 풀코스를 소화한 것이다.
갈렌 럽의 약점은 발 부상이다. 럽은 지난 1월 휴스턴 하프 마라톤에서 발뒤꿈치에 통증을 호소하며 완주를 포기했다. 이어 지난 1일에도 프라하 하프마라톤에서 경기를 마친 뒤 다시 발 통증을 호소했다. 61분59초의 기록으로 레이스를 끝마치긴 했으나 11위, 성에 차지 않는 성적표였다. 언론들도 이번 보스턴 마라톤에서 럽의 우승 가능성에 대해 ‘발 상태가 양호하다면’이라고 단서를 달고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럽의 우승을 기대하는 이유는 이번 시즌이 ‘오로지 마라톤에만 집중한’ 첫 시즌이기 때문이다. 럽은 그간 마라톤 이외에도 중장거리 종목 대부분에 출전했다. 2015년 베이징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1만m와 5,000m에 출전했고, 2012년에는 3,000m와 1,500m까지 뛰었다. 럽은 지난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리우올림픽에서는 마라톤 전에 1만m 종목에도 출전했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심했다”고 털어놨다. 오직 마라톤 하나만을 준비했던 기간은 없었던 셈이다.
리우올림픽에서 2시간 10분 5초로 동메달을 차지한 럽에게 미국인들은 이번 보스턴에서 더 나은 기록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 10년 간 보스턴마라톤의 평균 우승기록은 2시간 9분 19초다.
한편 이번 갈렌 럽의 보스턴마라톤 출전은 알베르토 살라자르(58ㆍ미국)의 ‘컴백’으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살라자르는 럽의 출전과 함께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 36년 만에 보스턴 무대에 선다. 1982년 보스턴마라톤에서 ‘백주의 결투’로 회자되는 우승을 차지한 그는 이후 육상 코치로 변신해 모 파라의 리우올림픽 1만m 금메달을 도왔다. 살라자르는 축구선수였던 럽의 재능을 일찍 발견하고 육상선수로의 전향을 도운 스승이다. 살라자르는 “보스턴에는 자갈 코스가 없기 때문에 발 부상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럽의 보스턴마라톤 우승을 자신했다.
오수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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