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이든 동네에 꼭 있다. 하나도 아닌 두 개 이상인 곳도 있다. 전 세계 119개국 3만5,000여개의 매장을 거느린 세계 1위 푸드서비스 기업 맥도날드는 음식제국이라 불린다. 이 정도 규모 다국적회사면 누구나 불현듯 떠올릴 만한 생각이 있다. 회사를 세운 맥도날드 형제는 잘 먹고 잘 살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노(NO)’다. 맥과 딕 맥도날드 형제의 성공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골든 아치’의 신화는 그야말로 허상이다. 맥도날드라는 햄버거 가게를 맨 처음 차린 사람들은 맥도날드 형제가 분명하지만, 정작 맥도날드를 거대 기업으로 만들어 이익을 챙긴 이는 형제와 생판 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20일 개봉하는 영화 ‘파운더’는 대중이 몰랐던 맥도날드의 성장 비화를 소개한다. 그런데 영화의 주인공은 맥도날드 형제가 아니다. 그들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인물 레이 크록(마이클 키튼)의 실화가 중심인물이다.
시작은 이렇다. 1954년 차를 타고 각지를 돌며 밀크셰이크 믹서기를 팔던 52세의 한 물 간 세일즈맨 크록이 어느 날 8대의 믹서기를 주문한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 사장들과 만나면서다. 그는 팔리지 않는 믹서기로 인해 고전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던 중 8대의 믹서기를 주문 받았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만일 크록이 생각지도 못 한 판매 실적에 뛸 듯이 기쁨만 누렸다면 오늘날의 맥도날드는 탄생하지 못했다. 그는 주문자가 궁금했다. 얼마나 대단한 가게이길래 한 대도 아니고 여덟 대나 주문하는 지 하는 의문이었다. 그는 곧장 캘리포니아의 샌버너디노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맥도날드 형제를 만나 ‘스피디 시스템’으로 전환해 30초 만에 햄버거와 음료, 감자튀김이 한꺼번에 나오는 모습에 빠져든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이 시스템은 오늘날 패스트푸드점 주방의 원형이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영화는 이들 형제의 혁신적이고 드라마틱한 변화를 단 10분만 할애해 보여준다. 마치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과거의 영상처럼 압축해서 풀어낼 뿐이다. 영화가 할애한 시간은 형제가 맥도날드 신화에 공헌한 기여도를 보여주는 듯해 씁쓸하다. 형제를 찾아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제안한 크록에 의해 지금의 맥도날드가 신화가 본격적으로 쓰여지게 됐기 때문이다.
크록의 끈질긴 설득은 맥도날드 형제를 움직였다. 1955년 일리노이주 디플레인스에 맥도날드 1호점을 차린 크록의 질주는 멈출 줄 몰랐다. 그러나 가족 경영을 내세우며 재료의 신선함, 음식의 품질관리 등에 신경 쓰는 형제들과의 마찰은 지점이 늘어갈수록 커진다. 그들의 갈등은 밀크셰이크를 만드는 아이스크림의 냉동시설로 인해 폭발하고 만다. 전기세가 만만치 않아 수익을 갉아먹었던 것. 크록은 밀크세이크 파우더를 아이스크림 대신 사용하는 것을 형제에게 제안했지만 보기 좋게 퇴짜 맞는다. 프랜차이즈 계약서 상 이들 형제의 동의 없이는 어느 것 하나도 바꿀 수 없었다.
크록은 결단을 내린다. 이미 맥도날드를 기업화해 토지를 매입, 각 지역에 매장을 세우는 전략으로 탈바꿈한 그로서는 경영에 있어서 이들 형제가 걸림돌만 될 뿐이었다. 1961년 크록은 비싼 수임료의 변호사를 대동해 형제에게 270만달러를 주며 상표권을 사온다. 매출의 1%를 로열티로 주겠다는 구두 약속만 한 채로. 이상주의자였던 맥도날드 형제와 성공을 위해서 물러서지 않는 사업가 크록과의 관계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첫 만남을 주도했던 밀크셰이크가 결국 결별의 씨앗이었던 셈이다.
영화는 이상주의자가 현실주의자에 의해 철저하게 무너지는 과정을 그리지만 감정을 이입하진 않는다. 크록이나 맥도날드 형제에게 분노나 동정심 없이 건조한 화법을 이어간다. 화를 내거나 온정을 베푸는 건 오로지 관객들의 몫이다. 맥도날드 형제가 1%의 로열티를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상표권도 빼앗겨 맥도날드라는 간판을 내리게 됐을 때 크록을 두고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영화는 그저 자본주의가 가진 양날의 검을 드러낼 뿐이다. 좋은 아이디어로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 수 있지만 자신의 것이 아니어도 자본가와 유능한 재무가 등이 합세하면 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차가운 자본주의의 생리를 드러내는 크록의 말은 허탈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맥도날드라는 이름을 본 순간 첫 눈에 사랑에 빠졌지! 반드시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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