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걸 왜 먹나 싶었다, 어릴 적에는. 맛이 존재한다면 그저 참기름 향 정도. 참기름 맛 보자고 굳이 찌고 찢고 조물조물 주무르는 수고까지 할 필요가 있나. 저 가지라는 채소는 나물 말고는 될 수 있는 게 그리도 없나. 가지는 주구창창 나물. 어린이 혓바닥에 나물 맛은 거기서 거기. 그 중에서도 단연 입맛 떨어지는, 거무죽죽하고 물컹거리고 질척하고 닝닝한, 가지 나물.
그 가지 나물 맛의 맛을 알아본 순간,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부드럽고 이렇게 향기롭고 이렇게 고소한 맛이 있다니. 내 입맛을 성장시킨 것이 나물인지 가지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물이라면 무엇으로 만들든 다 좋고, 가지라면 어떻게 만들든 다 좋으니까. 어쨌거나 나는 가지 예찬론자다.
가지는 사실 날것 그대로는 먹지 못한다. 떨떠름한 맛은 물론이고 약간의 독소를 포함하고 있어서다. 그러고 보니 가지는 좀 까칠한 면이 있다. 싱싱한 가지를 손질할 때 꼭지에 돋아난 가시에 찔릴 때가 있다. 냉장고에 두었다가 겉은 멀쩡한데 속이 온통 갈색 씨로 채워진 것을 볼 때도 있다. 매끈하고 반들반들 색 고운 가지 자태에 속은 죄다. 매끈한 자태 뒤에 숨은 까칠한 매력이랄까.
가장 가지다운 요리는 가지 절임이다. 가지가 가진 색과 모양과 질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쌀겨와 된장에 푹 박았다가 먹는 가지 누카즈케. 간단히 식초물에 며칠 절였다가 먹는 가지 절임. 일본식 가지 절임은 아삭함과 쫄깃함 사이에서 줄 타는 맛이 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의 가지 절임도 빼 놓을 수가 없다. 올리브처럼 담그지만 올리브에서 맛볼 수 없는 부드러움과 향기로움이 있다. 그 중에 베렝헤나 데 알마그로는 딱 계란만큼 자란 어린 과육을 꽃자루 채로 따서 절인다. 모양도 어찌나 예쁜지. 식초 물에 끓여서 만든 에스까베체는 절임과 졸임의 중간쯤으로 새콤달콤 부드러운 맛이다. 에스까베체에 올리브유를 듬뿍 뿌려 빵에 얹어 먹으면 흠 소리가 절로 난다.
사실 내가 알아차린 가지 요리의 맛이라면, 이게 정말 가지인가 싶은 맛이다. 구운 가지를 속만 파내서 만든 가지 캐비어. 일종에 가지 페이스트인데 치즈 요구르트 레몬 깨 양파 등 온갖 것들을 더해 다양한 맛을 낸다. 담백하면서도 기름진 아주 아주 부드러운 고기를 먹는 기분이다. 아니다. 웬만한 고기 요리를 뛰어넘는, 먹어본 적 없는 캐비어를 먹고 있다고 여겨지게 만드는 그야말로 캐비어다. 그냥 그대로 먹어도 좋고 빵에 발라 먹어도 좋고 고기요리에 소스처럼 곁들여도 좋다. 친화력이 좋은 애인 같다.
뜨거운 맛을 보여 줄 때도 있다. 녹말을 입혀 튀긴 다음 두부 고기 채소 등을 넣고 볶은 중국식 가지 볶음. 성급히 달려들었다가는 입천장 다 까진다. 거꾸로 가지 속에 소를 넣어 녹말을 입혀 튀긴 가지도 핫하기는 매한가지다. 스폰지처럼 기름을 쏙쏙 빨아들이는 가지의 속성에, 튀긴 것을 기름 둘러 한 번 더 볶아냈으니 그 기름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기름짐이 진짜 매력이다.
사실 가지는 튀겨야 제 맛이다. 튀긴 가지는 무슨 소스와도 잘 어울린다. 두반장 소스로 뒤범벅을 해도 맛있고, 토마토 고기 소스를 얹어 구워도 맛있다. 굳이 복잡한 소스를 만들 필요도 없다. 튀긴 가지의 단순한 맛을 잘 살리려면 그냥 단물을 좀 뿌리면 된다. 꿀이든 시럽이든 조청이든 잼이든 무엇이든. 그 중에서도 까냐를 추천한다. 까냐는 사탕수수 물을 고아 만든 스페인 식 조청으로, 달지만 약간 쌉쌀한 맛이 난다.
진짜 가지를 즐기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순정한 방법은 숯불에 구워 먹는 거다. 겉껍질이 시커매질 때까지 구운 다음, 껍질 벗겨 소금이나 설탕에 찍어 먹기. 물론 감자처럼 단단하지는 않아서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하지만. 탄 껍질이 약간씩 섞이면 또 별맛.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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