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영상] "그가 없었다면 연아도 없었다" 굿바이! 아사다 마오
알림

[영상] "그가 없었다면 연아도 없었다" 굿바이! 아사다 마오

입력
2017.04.11 21:24
0 0
김연아(왼쪽)의 최대 라이벌로 꼽힌 아사다 마오(일본)가 10일 밤 개인 블로그를 통해 은퇴를 발표했다. 사진은 2013년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싱글에서 1위와 3위를 차지한 김연아, 아사다가 함께 시상대에 선 모습. 연합뉴스
김연아(왼쪽)의 최대 라이벌로 꼽힌 아사다 마오(일본)가 10일 밤 개인 블로그를 통해 은퇴를 발표했다. 사진은 2013년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싱글에서 1위와 3위를 차지한 김연아, 아사다가 함께 시상대에 선 모습. 연합뉴스

‘피겨 여왕’ 김연아(27ㆍ은퇴)는 현역 시절 이런 말을 했다. “아사다 마오(27ㆍ일본)가 없었다면 나도 이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다.” 둘은 1990년생 동갑내기로 스케이트를 타는 내내 서로 비교되면서 선수 생활을 했다.

주니어 시절부터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스타로 지나칠 만큼 경쟁 관계에 얽매여 있다 보니까 중압감을 받고, 때로는 상대를 원망하기도 했다. 김연아는 자서전 ‘김연아의 7분 드라마’에 “왜 하필 저 아이(아사다)가 ‘나랑 같은 시대에 태어났을까’라는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둘의 라이벌 관계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김연아가 은메달을 목에 걸고 은퇴를 결정하면서 ‘아름다운 동행’을 마쳤다. 아사다는 당시 “(김)연아 선수와 오랫동안 비교됐고, 라이벌로 지내왔는데 그 덕분에 발전할 수 있었다”며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김연아가 빙판을 떠난 뒤에도 ‘올림픽 금메달 꿈’을 이루기 위해 선수 생활을 이어갔던 아사다도 스케이트를 벗었다. 아사다는 10일 밤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갑작스럽지만 피겨 선수생활을 끝내는 결정을 했다”면서 “지금까지 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던 것, 많은 걸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의 응원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연아(오른쪽)와 아사다 마오. AFP연합뉴스
김연아(오른쪽)와 아사다 마오. AFP연합뉴스

아사다의 피겨 인생은 김연아의 벽에 막혀 끝내 꽃을 피우지 못했다. 아사다와 김연아는 2004~05시즌 나란히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먼저 주목을 받은 것은 아사다였다. 아사다는 2005년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김연아를 제치고 우승했다. 그러나 이듬해 같은 대회에서는 김연아가 정상에 올랐다. 이 때부터 둘의 본격적인 라이벌 관계가 형성됐다.

시니어 무대에서도 초반에는 아사다가 두각을 나타냈다. 아사다는 2007년 시니어 첫 해 세계선수권에서 2위를 차지한 데 이어 2008년 같은 대회에서 1위에 올랐다. 반면 김연아는 2회 연속 3위에 그쳤다.

하지만 2009년부터 김연아의 독주가 시작되며 둘의 라이벌 구도는 흐려졌다. 그 해 4대륙 대회와 세계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휩쓸었고,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당시 여자 싱글 역대 최고점(228.56)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사다는 ‘점프의 교과서’로 불린 김연아를 따라잡기 위해 ‘필살기’인 3회전 점프 트리플 악셀에 매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개인 최고의 연기로 205.50의 고득점을 받고도 김연아에게 패해 은메달을 획득한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전부 했는데 아쉽다”고 눈물을 훔쳤다.

절치부심한 아사다는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고난도 점프를 추가했다. 그러나 소치 올림픽 쇼트프로그램에서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첫 점프에서 넘어지는 등 최악의 연기로 55.51점(16위)이라는 참혹한 점수를 받았다. 프리스케이팅에서 시즌 최고점(142.71)을 찍었으나 총 198.22점으로 6위에 그쳤다. 편파 판정 논란 속에 은메달을 차지한 김연아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아사다는 소치 올림픽이 끝난 뒤 그 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1위에 오르며 재기를 노렸다. 이후 1년 넘게 휴식을 취하다 2015년에 복귀했고, 2018 평창 올림픽을 향해 다시 뛰었다. 그러나 20대 중반의 나이에 돌아온 아사다의 기량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지난해 12월 일본피겨선수권대회에서 24명의 선수 중 12위로 추락하며 은퇴 가능성이 제기됐고,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일본 피겨스케이팅 전 국가대표 안도 미키(29)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동시대에 당신과 경쟁해 영광이었고, 일본 국가대표팀으로 함께 연기를 펼쳐 행복했습니다”라며 “당신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예쁘고 귀여운 피겨 선수였습니다”라고 적었다.

한편 김연아는 아사다의 은퇴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