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전역은 요즘 셰익스피어가 써 내려가는 믿기 힘든 희극 스토리에 떠들썩하다.
물론 16세기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되살아난 건 아니다. 주인공은 밑바닥까지 추락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클럽 레스터시티를 풍랑에서 건져낸 크레이그 셰익스피어(54) 감독이다.
레스터시티 코치였던 셰익스피어 감독은 지난 2월 24일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6) 전 감독이 경질되자 감독대행으로 지휘봉을 이어받았다. 그 전까지 레스터시티 성적은 참혹했다. 올해 들어 정규리그 6경기에서 1무 5패. 한 골도 못 넣고 12골을 내줘 강등권인 17위까지 떨어졌다. 세비야(스페인)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도 1-2로 패하자 구단은 지난 시즌 132년 만에 창단 후 첫 우승을 안긴 라니에리 감독을 전격 해임했다. 라니에리 감독과 선수들의 불화설이 불거졌고 ‘선수들이 라니에리 감독을 내쫓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선수들이 태업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구단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감독이 팀을 놀랍게 변화시켰다.
감독대행 데뷔전이었던 리버풀과 경기에서 3-1로 이긴 걸 시작으로 지난 5일 선덜랜드전까지 정규리그 5연승을 달렸다. 지난 달 15일 세비야와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는 짜릿한 2-0 승리로 1차전 패배를 뒤집고 8강에 올랐다. 올해 들어 정규리그 무득점이었던 공격진은 정규리그 5경기에서 12골을 몰아쳤고 라니에리 감독 아래서 18경기 5골에 그쳤던 주축 공격수 제이미 바디(30)는 5경기 5골을 터뜨렸다. 비록 지난 10일 에버턴과 경기에서 난타전 끝에 2-4로 패해 연승 행진은 막을 내렸지만 레스터시티는 다시 작년의 강력한 모습을 되찾았다. 영국 BBC는 “셰익스피어 감독은 제이미 바디를 활용한 빠른 역습, 리야드 마레즈(26)의 창조적인 플레이를 부활시켰다”며 “여우군단(레스터시티 애칭)이 다시 다시 1년 전으로 돌아왔다”고 평했다. 셰익스피어 감독은 지난 달 13일 대행 꼬리표를 떼고 정식 감독이 됐고 최근에는 재계약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정규리그 11위로 강등권에서는 멀찌감치 벗어난 레스터시티의 둘풍이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이어질지 관심이다.
스페인(레알 마드리드ㆍ바르셀로나ㆍ아틀레티코 마드리드)과 독일(바이에른 뮌헨ㆍ도르트문트) 틈바구니에 낀 레스터시티는 챔피언스리그 8강에 오른 유일한 프리미어리그 팀이다. 오는 13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8강 1차전 원정 경기를 치른다. 16강에서 세비야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모습을 기억하는 팬들은 또 한 번의 반전 드라마를 기대하고 있다. BBC는 “작년 8월에서 올 2월 사이 어두운 시간을 지난 레스터시티가 챔피언스리그에서 또 다른 꿈을 꾼다”고 전했다.
한편, 라니에리 감독이 물러난 뒤 경기내용이 180도 달라지자 역시 선수들이 태업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라니에리 감독은 스카이스포츠와 인터뷰에서 “내 선수들이 나를 끝장냈다고 믿을 수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며 “이전에는 적게 벌었지만 우승 후 두 세 배 연봉을 받고 비 시즌 동안 전 세계를 도는 환경에서 다시 재정비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고 진단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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