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리보다는 정치변론, 심판정에서의 막말 소동, 변호인들의 전략 실패와 팀워크 부재, 급기야 지난 9일에는 변호인 7명이 대거 해임되는 사태까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부터 국정농단 수사대응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변호인 선임에 오판을 한 게 아니냐는 말이 법조계 안팎에서 적지 않다. 동생인 박지만 EG회장도 탄핵 선고 후 새 변호인을 물색하겠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했다. 이러한 부실 변론이 변호사 비용과 연관돼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탄핵심판에 상응하지 못한 적은 보수가 의뢰인 이익보다 변호사 각자의 이해타산으로 흐른 결과라는 것이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 측은 헌재 탄핵심판 사건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말 사법연수원 11기 법원장 출신 A변호사에게 찾아가 “수임료 1,000만원을 줄 테니 변호를 맡아달라”고 했다. 대통령 법률 대리인단이 착수금 500만원만 받거나 무료 변론을 한 것과 비교하면 두 배를 제시한 셈이다. 하지만 일반 민ㆍ형사 사건 착수금이 330만~500만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아주 넉넉한 금액은 아니다. 특히 국가적 중대 사건에 대한 심적 부담과 자신이 맡은 사건을 포기하고 대통령 변호에 매달려야 하는 문제, 수사기록 5만쪽을 검토해야 하는 수고로 보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A변호사는 사건에 투입할 시간당 비용과 진행 중이던 다른 사건 의뢰인에게 물어줄 위약금을 셈해도 큰 손해로 보고 거절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 측이 다시 2,000만원으로 올려 제시했지만 손을 저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탄핵심판 사건을 빠짐없이 지켜본 한 원로 법조인은 “대통령 변호인이 도움이 안 되는 증거에 동의하는 것을 보고 수사기록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변론하는 듯한 인상까지 받았다”며 “3억원 정도만 들여 연륜 있는 변호사를 선임했다면 제대로 된 법리논쟁과 사실관계 다툼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달 공개한 박 전 대통령의 재산은 삼성동 자택(27억1,000만원 상당)을 제외하면 가용금액은 예금 10억2,820만원이 전부다.
안이한 상황판단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다. ‘대통령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이 수임료에 연연하지 않고 사력을 다해 변론해줄 것이라고 본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대법관을 지낸 한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임기가 4년 남아 베테랑 변호사들이 착수금도 없이 진력을 다했다”며 “혹여 논공행상을 바랐대도 이상할 게 없지만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박 전 대통령은 그런 유인이 없어 더 큰 보상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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