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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도 피의자도 중증치매…

입력
2017.04.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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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서 다툼 뒤 쿵소리 들려”

목격자 진위 가리기도 힘들어

치매 환자를 앓고 있는 한 할아버지. 한국일보 자료사진(기사와 관련 없음)
치매 환자를 앓고 있는 한 할아버지. 한국일보 자료사진(기사와 관련 없음)

지난 1일 낮 경기 광주시 한 노인요양병원에 입원해 했던 A(71)씨가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를 보여 일반병원으로 옮겨졌다. 엑스레이와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A씨의 머리뼈 뒷부분에 금이 가는 등 골절증상이 확인됐다. 뇌출혈 진단을 받은 그는 사흘 뒤인 4일 오후 7시30분쯤 안타깝게도 숨을 거뒀다. 하지만 A씨는 생전 사흘간의 병원치료 과정에서 어떻게 다쳤는지, 행적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불과 10여분 전 상황도 떠올릴 수 없는 중증 치매를 앓고 있었던 탓이다.

수사에 나선 경찰이 그와 요양병원에서 한 병실을 쓰던 3명을 상대로 조사에 들어갔으나 애를 먹기는 마찬가지였다. B(79)ㆍC(70대)씨 등 2명이 같은 중증 치매 증세로 고통을 겪고 있던 것이었다.

그나마 A씨 사망 원인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는 지병으로 수술을 한 뒤 A씨 등과 요양 중이던 D(77)씨의 진술이었다. D씨는 “지난달 31일 점심을 먹고 난 뒤 화장실에 있는데 B씨가 A씨에게 물을 뿌려 다투는 소리가 들렸고 ‘쿵’ 소리가 들려 나와보니 A씨가 밑에 깔린 채 두 분이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원인은 B씨 병세와 관련한 사소한 말다툼이라고 했다. 몸싸움 뒤 A, B씨는 다른 환자들과 어울려 아무렇지 않게 놀이치료를 받고 TV를 시청하는 등 멀쩡히 생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가 숨진 뒤 B씨를 두 차례 방문, D씨 진술의 신빙성을 조사했지만 B씨는 A씨의 사진을 보고도 기억을 못했다고 한다. A씨와 다툰 적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그런 적이 있었느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경찰은 일단 ‘쿵’ 소리를 들었다는 요양보호사와 D씨의 진술, 부검의 소견 등을 토대로 B씨를 폭행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병원 측의 관리소홀 등 과실 여부도 들여봤으나 혐의점은 없었다. 다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A씨를 기소하더라도 법정에서 다툼의 여지가 클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B씨의 행위가 A씨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인과관계’는 성립된다고 보고 있지만 B씨가 벌을 면할 수 있는 형법상 ‘심신장애’ 인지 여부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당시를 흐릿하게나마 기억하는 유일한 목격자인 D씨 진술을 재판부가 얼만큼 신뢰할지도 관건이다.

경찰 관계자는 10일 “피해자와 피의자 보호자들도 그저 안타까워할 뿐”이라고 씁쓸해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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