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9 대통령 선거’가 5자 구도로 확정됐다. 돌발변수가 나올 수 있지만, 오랜만에 다양한 캐릭터들이 본선무대에 올라 버라이어티 뮤직쇼를 보는 느낌이다.
먼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벚꽃만 피면 떠오르는 ‘계절 가요’를 닮았다.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데 여기저기 흘러나오고 가락도 익숙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경우다. 그래서 겨울을 지나면서 갑자기 ‘대세’가 됐다.
대세를 위협하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보면 ‘복면가왕’이라는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돌’ 가수가 떠오른다. 익히 얼굴이야 알았지만, 이렇게 가창력이 좋은 줄은 몰랐다는 거다. 그래서 다시 봤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선 분위기가 다르다. 뭐니뭐니해도 ‘뽕짝’이다. 꽃놀이 가는 어르신들이 그나마 어깨를 들썩이는 건 전통가요. 이런 ‘길보드 마케팅’에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역시 강자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클래식을 닮았다. 인물로 보나, 노선으로 보나 유력 후보들보다 앞서면 앞섰지 처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쩐지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 ‘고품격’인 건 분명한데, 귀 기울이는 이들이 적다.
독보적 인디밴드 같은 이가 심상정 정의당 후보다. 추구하는 음악도 수준 있고 마니아층도 탄탄하다. 그런데 홍대 주변이나 가야 들을 수 있다. 요즘 열광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언더그라운드’다.
그런데 이런 다채로움 대신 똑같은 노래를 부르게 하려는 시도가 솔솔 피어 오른다. 단일화니, 연대니 하는 이른바 ‘정치공학’이다. 내세우는 명분도 다양하다. 유력한 특정 주자에 맞서기 위해, 누가 대통령이 되든 맞닥뜨릴 ‘여소야대’ 국회의 협치나 연정을 위해…. 돈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최대 509억원인 막대한 선거자금을 보전 받으려면 지지율이 15%를 넘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군소후보들은 당내에서조차 중도하차와 후보 단일화의 압박에 직면해야 하는 게 현실 정치다. 이런 정치공학에는 유권자가 없다. 노선이 다른 후보들 사이의 ‘묻지마 단일화’에 지지자들은 길을 잃는다. 차악(次惡) 후보도 못 찾아 투표를 포기하는 유권자를 양산하고야 만다.
그런 인위적 단일화는 유권자를 우롱하는 짓이다.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자기의 길을 꾸준하게 걷는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뻔한 꼴찌라고 완주하지 않고 포기했다면, ‘바보 노무현’은 있었어도 ‘대통령 노무현’은 없었을 것이다. “정치 지도자는 상황을 만들어가고 주도하는 사람이지, 따라가는 자가 아니다.” 정치원로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후배 정치인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다. 더구나 우리 국민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유권자들이 아니란 게 이미 증명되지 않았나. 51.6%의 지지를 보냈던 대통령도 아니라는 판단이 들자 끌어내렸다.
다른 장르의 특색을 섞은 퓨전 음악도 있지 않냐고?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떴다방’식 단일화를 퓨전이라고 우긴다면 참으로 딱한 일이다. 그런 사이비 퓨전이 사랑을 받았다면 말로가 비참한 우리네 대통령사(史)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항과 실험의 록음악이 매너리즘에 빠지자 등장한 게 얼터너티브록이다. 그 얼터너티브록의 전설로 불리는 그룹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남긴 말이 있다.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 사랑 받을 바에는, 내 본연의 모습으로 미움 받는 게 낫다.” 대안 역시 자기 색깔이 분명해야 한다는 얘기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정치는 더욱더 그렇다. 당초의 출사표를 우습게 만드는 ‘나답지 않은’ 단일화로 권력의 한 축을 꿰찰 바에는, 본연의 모습으로 낙선하는 게 나을 수 있다. 그런 낙선의 감동이 차후 당선의 환희로 이어지는 게 정치의 맛이고 매력이다. 당선자도 낙선자도 이번 대선에서 받아들 최종 득표는 마침표가 아닌 엄중한 출발점이 돼야 한다. 그래서 누구도 할 수 있는 게 정치지만 아무나 못하는 게 정치다.
김지은 정치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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