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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여호 투혼, 남자 선수들이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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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여호 투혼, 남자 선수들이 배워야…”

입력
2017.04.0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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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북한의 여자 아시안컵 예선 B조 2차전에서 양 팀 선수들이 전반 초반 거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평양=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7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북한의 여자 아시안컵 예선 B조 2차전에서 양 팀 선수들이 전반 초반 거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평양=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여자축구대표팀이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남북대결을 극적인 1-1 무승부로 마친 7일 밤, 단장 자격으로 평양에 온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 남측 인사들은 여자대표팀 선수들의 투혼에 큰 감동을 받았다. 경기 전 아시아축구연맹(AFC)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을 이길 수 있다면 2010년 U-20 월드컵 3위와 잉글랜드 정규리그 우승 및 올해의 선수 등 지금까지 얻은 모든 것을 바꾸고 싶다”던 지소연의 각오는 말로 끝나지 않았다. 김 부회장은 "이날 경기가 중계됐다면 많은 국민들이 여자축구의 가치를 알고 사랑해줬을 것이다. 실력과 기술도 훌륭했지만 정신력이 대단했다. 가슴 찡한 경기였다”고 전했다.

0-1로 뒤지다가 장슬기의 동점골이 터진 뒤 환호하는 한국 선수들. 평양=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0-1로 뒤지다가 장슬기의 동점골이 터진 뒤 환호하는 한국 선수들. 평양=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투혼, 남자 선수들 배워라

90분 혈투가 끝난 뒤 윤덕여 여자대표팀 감독의 표정은 무승부의 기쁨보다 안도감이 묻어 나왔다. 5만 관중의 엄청난 열기 앞에서 온 몸의 기가 다 빠져나간 듯했다. 선수들도 그랬다. 교체 투입된 뒤 왼팔이 빠졌던 정설빈은 공동취재구역에서도 팔을 움켜쥐고 버스에 올랐다. 주장 조소현은 동료 선수를 업고 나왔다. 상대의 가격에 콧등이 다친 김정미는 부상 부위에 멍이 든 상태에서 인터뷰에 나섰다.

윤덕여호 선수들은 경기장에 들어설 때부터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경기 전 무채색 옷을 입은 북한 관중이 황금색 나팔을 손에 쥐고 박수를 치자, 교체 명단에 올라 먼저 벤치에 앉은 선수들은 같이 박수치고 미소를 지었다. 전반 5분 북한 선수가 페널티킥을 잡아낸 김정미를 가격하자 수비수 임선주가 달려들어 야구의 벤치 클리어링과 같은 신경전을 펼쳤다. 김 부회장은 “여자축구에서 저렇게 몸싸움하고 신경전 벌인 적이 있었나”라고 반문하며 “초반엔 엄청난 응원소리에 선수들이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잘 싸웠다. 다들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뛰었다. 정설빈의 부상도 선수들을 깨운 것 같았다”고 칭찬했다.

그는 이내 “여자 선수들의 투혼을 남자 선수들도 배웠으면 좋겠다. 5월 U-20 월드컵, 6월 카타르전에서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남자대표팀은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본선 직행권인 A조 2위를 간신히 지키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지도력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으나 선수들이 멘탈 문제도 심각하다는 게 축구계의 생각이다. 축구협회 다른 관계자도 “이날 경기를 남자대표팀 선수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라고 했다.

북한을 응원하는 장철구 종합대학 학생들. 평양=서재훈 기자
북한을 응원하는 장철구 종합대학 학생들. 평양=서재훈 기자

북한의 엄청난 응원 열기는 어느새 우리 축구에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표를 팔았는지 동원을 했는지를 떠나 홈 구장을 상대방에 ‘지옥’처럼 만든 김일성경기장의 함성과 응원 물결은 대단했다.

티켓이 왜 한 장? 그러니 만나는 것 아닙니까

무승부였지만 웃은 쪽은 당연히 한국이었다. 북한은 한국보다 이틀 먼저 최종전을 마친다. 한국이 북한의 골득실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11일 마지막 경기를 치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경기장과 호텔에서 북한 주민들은 한국 사람들을 향해 “기쁘시겠습니다”란 축하도 건넸다.

윤덕여(왼쪽) 여자대표팀 감독과 이번 대회 단장 자격으로 평양에 간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평양=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윤덕여(왼쪽) 여자대표팀 감독과 이번 대회 단장 자격으로 평양에 간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평양=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김 부회장은 북한축구협회 한은경 부회장과 나눈 얘기를 소개했다. 여성인 한 부회장은 북한축구의 행정을 상징하는 인물로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높다. 오는 5월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회 위원 선거에도 출마했는데 하나 뿐인 AFC 내 여성 위원 자리에 당선될 것이 유력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 부회장은 “한 부회장에게 ‘실력을 놓고 보면 남북이 모두 본선에 갈 자격이 된다. 왜 하나만 올라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며 “한 부회장이 ‘그래도 이렇게 같이 경기하니까 선생님도 평양에 한 번 오시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답하더라”며 웃었다. 한 부회장은 북한-홍콩전, 한국-인도전이 연이어 열린 지난 5일 중계권 및 출입카드 문제 등으로 국내 방송사의 그라운드 내 진입을 단호하게 가로막는 경기장 관리인 및 관련 인사들에게 “내가 책임질 테니 들여보내라”고 직접 지시하는 카리스마를 발휘하기도 했다.

김정은 왜 안 왔을까

남북대결의 또 다른 관심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등장 여부였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5년 동아시안컵 우승, 지난해 U-17 월드컵 및 U-20 월드컵 동반 제패 등 북한 여자축구 영광의 순간 때 항상 나타나 노고를 치하하고 각별한 관심을 드러냈기에 그의 출현 가능성도 자연스럽게 고조됐다. 최룡해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이 북한의 앞선 경기에 나타났기 때문에 '결승전' 같은 남북전엔 김정은 위원장이 나타나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도 가능했다. 그러나 이날 그의 모습은 공식적으로 보이지 않았고, 최룡해 부위원장만 자리를 지켰다. 사실 김정은 위원장의 불참은 경기 직전 감지됐다. 북측 인사는 “경비가 강하지 않고 다른 경기 때와 똑같은 것을 보면…”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북한 로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시내 버섯공장을 찾아 지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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