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각도 호텔에서 바라본 평양 시내는 고요함과 적막이었다. 안개 낀 아침, 창 밖으론 대동강변과 색색의 건물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멀리에는 높이 170m의 주체사상탑이 횃불을 밝히고 있었다.
기자는 3일부터 11일까지 북한 평양에서 열리고 있는 2018 아시안컵 B조 예선(여자축구)을 취재하기 위해 평양에 체류 중이다. 한국 축구가 평양에서 경기를 한 건 1990년 10월 11일 ‘남북통일축구’가 마지막이었다. 한국(FIFA랭킹 17위)은 5일 인도를 10대 0으로 대파했고 7일 경기의 하이라이트라 할만한 북한(10위)과의 남북대결에서 1대1 무승부를 거뒀다. 승자도 패자도 없었던 셈이다.
경기 취재도 중요하지만 숙소와 경기장을 오가는 차량에서 짬짬이 거리 표정을 스케치했다. 지난해 초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사실상 모든 분야의 남북교류가 끊긴 현실에서 그나마 스포츠를 통한 남북의 끈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다행스런 일이다. 대한민국 강릉에서 북한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인공기를 가슴에 달고 링크를 누볐듯이, 북한 모란봉 구역 김일성경기장에서도 지소연을 비롯한 태극낭자들의 가슴에 태극기가 빛났다.
3일 오후 중국 베이징을 통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뜨거운 환대는 없었지만 차분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순안공항은 마치 김포공항에 온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식료품 상점과 커피숍이 간판이 있었지만 인적은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간혹 마주치는 이들은 얼굴에 웃음을 띄고 “안녕하십네까”라며 인사를 건네 왔다.
인도와의 경기가 열린 5일, 평양 거리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알록달록 비옷에 장화를 챙겨 신고 학교로 등교하는 어린이들은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 앞 풍경과 다름이 없었고 한복 치마를 부여잡고 걸음을 재촉하는 여성들은 무표정 속에서도 평범한 일상 생활이 엿보였다. 경광등을 손에 들고 수신호를 보내는 교통보안원의 모습은 낯익은 풍경이었다.
‘려명거리’라 명명된 미래과학자 거리의 나선형 아파트는 구조도 신기했지만 높이 또한 만만치 않았다. 확실히 북한 사회는 방문객들에게 건물과 구조물로 위용을 세우려는 것 같다. 이동 경로와 시간 등 취재의 한계로 더 많은 평양의 구석구석을 볼 수 없었지만 이곳 또한 봄이 오고 꽃이 피고 사람이 사는 곳임은 느낄 수 있었다.
평양 사진·글 공동취재단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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