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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깊이 있는 문어체, 노무현은 메시지 간결ㆍ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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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깊이 있는 문어체, 노무현은 메시지 간결ㆍ선명

입력
2017.04.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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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는 자신감 있게 가르치는 스타일” 평가

시대 따라 광장ㆍ거리ㆍ미디어정치로 변화

국내 정치인 중에는 누가 명연설가로 꼽힐까. 정치 환경의 변화에 따라 연설의 스타일과 그에 대한 평가도 달랐다.

매스미디어가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통로가 되기 전인 1970~80년대는 ‘광장 정치’의 시대였다. 광장 연설은 수 만, 수 십만 군중 앞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결집력을 과시하는 방식이었다. 그 백미는 1971년 4월 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열린 김대중(DJ) 당시 신민당 후보의 장충단공원 연설이다.

DJ는 삼선개헌을 거쳐 출마를 강행한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맞섰다. 선거를 9일 앞둔 4월 18일 장충단공원에 80만명 인파가 몰렸다. 1만여명은 유세가 끝난 뒤 밤새 ‘정권교체 김대중’을 외치며 광화문까지 행진했다. DJ는 군중을 휘어잡았다. 연설 내용도 파격적이었다. 그는 “이번에 우리가 집권하지 못하면 박정희씨의 영구집권 총통시대가 온다”며 유신시대를 예언했다. 향토예비군제 폐지, 지방자치제 도입, 부유세 신설을 약속했다. 일주일 뒤인 25일 박 대통령이 같은 장소에서 연설을 했지만 청중은 DJ 때보다 적었다. 선거는 94만여표 차이로 박 대통령의 승리. 그러나 연설만큼은 DJ가 압도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40대 기수론을 앞세운 DJ는 경제, 외교,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연설을 했다. 깊이 있는 문어체를 구사하면서 청중의 큰 공감을 이끌어 냈다”고 설명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힘 있는 연설”이 강점이라고 최 교수는 평했다. 그는 “자칫 완전히 다른 뜻으로 오해를 살만한 YS의 사투리도 거침 없는 연설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DJ가 논리를 앞세운 설득형이라면 YS는 자신감 있게 가르치는 스타일”이라고 비교했다.

DJ, YS, 김종필(JP)의 ‘3김(金) 시대’와 함께 전성기를 맞았던 대규모 광장 연설은 청중 동원 등 ‘돈 선거’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과 함께 1997년 15대 대선부터 사라지기 시작했고, 2004년 선거법 개정 이후 정당연설회는 아예 금지됐다. 소규모 거리 유세가 이를 대체했고, 방송 연설(1992년)과 TV토론회(1997년)가 도입되며 매스미디어형 소통이 새롭게 떠올랐다. 최광기 토크컨설팅 대표는 “100만 군중을 흥분시키는 웅변투와 거대한 메시지 전달 대신 청중과 대화를 나누는 식의 연설로 바뀌었다. 시민들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듯 소통을 잘 해야 좋은 연설이 되는 시기였다”고 밝혔다.

‘미디어 정치’의 시기에 꼽을 만한 달변가는 단연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시사평론가 이강윤씨는 “연설은 간결했고, 두괄식으로 전달하는 메시지가 선명했다. 어렵지 않은 구어체로 때론 청중이 무릎을 탁 치게 만들고 때론 열정적 연설로 가슴을 울리게 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예를 들어 행정수도 이전을 두고 ‘공무원 몇 명 (세종시로) 옮긴다고 경기가 살아나겠느냐’며 구체적이고 쉬운 논리를 펴 호응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서울시장(1995년)과 대통령(1997년) 후보로 TV토론회에 나왔던 박찬종 전 의원도 “가르치려 들지 않고 논리정연하게 박학다식함을 드러내는 스타일”(이강윤씨)로 거론된다.

그러나 대선 TV토론회가 도입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후보들끼리 정책의 차별성과 철학, 논리를 꼼꼼히 비교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후보들의 역량도 한계였지만, 너무 많은 후보들을 출연시켜 기계적으로 시간을 분배하는 방식이 제대로 된 검증을 가로막았다. 오히려 미디어가 이미지만 만드는 데에 그치기도 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MB에게 패한 뒤 승복하고 ‘아름다운 패자’의 이미지를 얻은 게 대표적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정치’가 될 이번 대선에서도, 메시지와 감동이 있는 명연설은 보기 어려울 것같다. 대신 짧고 강렬한 메시지에 능한 정치인이 부각될 수 있는데, 이재명 성남시장이 ‘SNS 정치’의 수혜자로 꼽힌다. 이씨는 “이 시장이 ‘핵 사이다’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큰 지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정치인의 연설은 한결같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유권자들이 이미지 정치의 껍질을 걷어내면 내 말을 하는 것인지 남의 말을 하는 것인지. 진심을 말하는 것인지 연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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