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문은 이렇게 두드린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은 정말 그렇게 들린다.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 곡의 표제는 베토벤이 붙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려움 끝에 승리가 있다’는 그의 음악적 메시지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곡이다. 베토벤은 한 번에 절정으로 도달하는 경우가 없다. 절정을 향한 여러 번의 시도는 음악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3악장의 끝 부분, 이를 통한 4악장 도입부에선 음악을 모르는 사람조차도 승리감을 느낄 수 있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도 작곡가 자신이 붙인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황제에 버금가는 위엄을 느낄 수 있다. 이만큼 당당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곡은 드물다. 주제가 가진 리듬을 통해서부터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닌 신적인 존재’를 보여주는 듯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베토벤의 소품 중 ‘바가텔’이 있다. 특히 6개의 간단한 소품으로 이뤄진 작품번호 126번을 좋아한다. 126번은 베토벤의 말년 작품에 해당한다. 짧은 음으로 촘촘히 쓴 악보가 아니라 긴 음가들을 사용해 악보에 공간이 많다. 처음 들으면 베토벤 작품이 맞는지 되물을 정도로 안정적이고 초월적인 느낌을 받는다. 그 동안의 역경과 고난을 초월한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랄까. 우리가 세상 위에 서 있는 느낌을 경험하기에 적합한 곡이다. 그래서 나 역시 나이가 조금 더 든 후에 연주해 볼 생각이다.
요즘 연주자들은 독창성이 이전보다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인터넷 이전은 말할 것도 없이 음반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너무나 독창적이라서 흉내 낼 수도 없는’ 연주자들을 만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연주를 들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개성이 살아있는 연주를 선보인 건 아닐까. 아르투르 슈나벨(1882~1951), 빌헬름 박하우스(1884~1969)의 연주는 말년에 남겨진 음반으로 들어볼 수 있다. 혹자는 이질감이 느껴진다고 말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연주는 한 번만 들어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개성이 넘친다. 베토벤이 작곡한 의미를 파악해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그릇에 담을 줄 아는 것도 중요하기에 이들의 연주를 추천하고 싶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ㆍ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의 말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정리=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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