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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개헌 투표, ‘에르도안 인기 투표’ 벗어날 수 있을까

입력
2017.04.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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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고향인 라호르의 시민들이 에르도안의 연설을 기다리며 터키 국기를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3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고향인 라호르의 시민들이 에르도안의 연설을 기다리며 터키 국기를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는 우리를 지지해 준 유일한 사람이에요. 늘 억압당하던 우리 곁에 선 사람을 어떻게 믿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지난 2월 터키 수도 앙카라의 한낮 햇살을 견디고 선 나지르(가명ㆍ여)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날 앙카라에서 열린 개헌 찬성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른 아침 동부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접한 도시 반에서 920㎞를 날아왔다. 지친 기색 속에서도 나지르는 ‘왜 개헌에 찬성하냐’는 질문에 짙은 와인색 히잡을 매만지며 “그(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는 터키를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우리의 안전과 히잡, 쿠란, 모스크를 위해서라도 답은 ‘네’(Yes) 뿐이죠”라고 단호히 답했다.

16일 대통령제 전환 개헌 국민투표를 앞두고 터키 사회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운데,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영웅적 숭배가 터키를 절대권력의 국가로 몰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총리 시절인 2005년부터 강력 추진해온 개헌 국민투표는 광적인 친(親)에르도안 열기로 인해 어느새 ‘에르도안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접어들었다. 나지르뿐 아니라 8,000만 터키인 중 최소 절반이 ‘초제왕적’ 대통령제로의 개헌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반대 진영도 대통령에 대한 견제ㆍ균형의 상실을 우려하며 사투를 벌이고 있으나 에르도안 지지 여론을 쉽사리 잠재우지 못한 채 열흘 앞 투표를 맞닥뜨리고 있다.

지난달 11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연설 도중 지지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AP 연합뉴스
지난달 11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연설 도중 지지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AP 연합뉴스

“터키 대통령제 개헌은 재앙”

이번 개헌안의 통치체제 개혁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여당 정의개발당(AKP)이 발의, 지난 1월 의회 문턱을 넘은 개헌안은 국가 및 정부 수반을 총리에서 대통령으로 바꾸는 내용이 주다. 하지만 새로운 대통령에게 입법, 사법부까지 통제할 권한을 대거 부여하면서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개헌안에 따르면 대통령은 ▦의회 승인 없이 모든 장관을 임명 ▦사실상 의회를 우회한 입법이 가능할 뿐 아니라 ▦사법부 고위 재판관들에 대한 압도적 임명 권한을 갖는다. 또한 현재 2019년까지 임기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개헌 시 최장 2029년까지, 즉 총 23년간 집권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이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든 권력을 남용할 수밖에 없는 체계”, “터키식 대통령제는 재앙의 레시피”라고 비난하는 이유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게 개헌이 위험하다는 지적은 무의미해 보인다. ‘스스로 독재 속으로 걸어간다’는 손가락질 속에서도 이들에게 개헌은 국민인 자신들의 뜻을 반영할 ‘민주주의’다. 터키공화국 건국 이념이었던 케말리즘(정교 분리 개혁)에 따라 수십년간 친유럽ㆍ세속주의 정책을 펼친 엘리트 정치인, 즉 ‘하얀 터키인’(White Turkish)들은 히잡 착용 등을 제한하고 빈민도 돌보지 않은 반민주 세력으로 굳었다. 이에 반해 이슬람식 교육을 부활시키고 복지를 대폭 늘린 에르도안은 무슬림 국민들에게 민의 그 자체인 것이다. 운전 기사로 일하고 있는 아뎀 잔카야(42)는 “신장 질환에 걸렸던 어머니는 국립 병원조차 이용하지 못하다 에르도안 대통령 이후 매주 세차례 무료로 투석을 받고 있다”며 “그는 우릴 소중하다 느끼게 해준다”고 극찬했다.

에르도안을 향한 경외심은 특히 지난해 7월 쿠데타 시도로 더욱 강해졌다. ‘쿠데타=반민주’라는 에르도안 지지층은 쿠데타 시도에 맞섬으로써 국가의 주인이 됐다. 특히 에르도안 대통령은 대중의 소외감을 꿰뚫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자신을 국가와 불가분의 존재로 만들면서도 지지자들을 주연으로 세우는 데 성공했다. “나의 사람들”을 습관처럼 사용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 진압을 돕다 사망한 시민의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도 희생자를 “순교자”라 칭하며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치켜세웠다. 이어 “우리는 어느 누구의 정의, 도움, 이해에도 기대지 않고 우리 스스로 해낼 것”이라며 자부심을 고취시켰다.

50대 50, 미궁 속 16일

개헌 반대파들도 속수무책 당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스탄불 등 주요 도시에서 ‘하이스(hayirㆍ반대)’라고 적힌 전단을 배포하는 활동가들이 경찰에 연행되거나 최루 가스를 맞는 일이 수십차례 일어났지만 이들은 캠페인을 지속하고 있다.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소속 솔마즈 아치콜은 “사방에서 공격받으며 힘든 캠페인을 이어가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개헌이 통과되는 것이 더 두렵다”고 아랍에미리트 일간 더내셔널에 말했다. 성과도 나쁘지 않다. 공화인민당과 제3야당 인민민주당(HDP) 유권자의 개헌반대 비율은 90%에 달하고 있으며 제2야당 민족주의행동당(MHP)의 경우 개헌지지 당론에도 정당 소속 유권자의 71.5%가 등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도 결과는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최신 여론조사 결과인 3월24~27일 ORC의 발표에서는 찬성이 55.4%로 44.6%에 그친 반대 여론을 압도했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 전인 17일 예지치 발표에서는 반대(51.1%)가 찬성(48.9%)을 앞지르는 등 유력 여론조사업체들 사이에서도 미세한 차로 가부가 갈리고 있다.

반쪽의 터키, 봉합할 수 있을까

확실한 점은 찬반 어느 측이 승리하든 이후 정부는 절반의 터키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에르도안 정권도 계속해서 개헌 반대 진영을 “국민의 적”이라고 폄하하며 갈등과 분열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에 ‘터키의 부상’ 저자인 소네르 차압타이는 “에르도안에 대한 비판이 등장할 때마다 이는 정권을 전복하려는 음모론으로 치부된다”며 “터키는 ‘친AKP 대 반AKP’ ‘쿠데타 대 반쿠데타’ ‘친에르도안 대 반에르도안’의 분열을 끊임없이 계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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