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윤진(44)과 천우희(30)가 경쟁자가 됐다. 가뜩이나 손에 꼽을 만큼 찾아보기 힘든, 여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로 대결을 펼치고 있다. 팬들이라면 반가우면서도 속상하다. 김윤진 주연의 영화 ‘시간 위의 집’과 천우희의 ‘어느 날’은 지난 5일 함께 개봉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개봉 첫날 ‘어느 날’이 2만9,500여명으로 일일 흥행순위 4위, ‘시간 위의 집’은 2만1,500여명으로 6위에 올랐다.
김윤진은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 엄마의 옛 모습과 나이든 현재를, 천우희는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 후 영혼이 돼 깨어난 시각장애인 미소로 등장한다. 두 사람은 스릴러와 판타지라는 각기 다른 장르에서 전혀 다른 연기를 선보인다. 하지만 한국영화계를 걱정하는 대목에선 한 목소리를 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남케미’를 내세우고 ‘브로맨스’를 앞세운 영화들이 충무로를 뒤덮으면서 국산 여성영화는 극장가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어서다. 두 사람으로부터 새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한국영화의 고질, 앞으로의 다짐 등을 들었다.
-올해 한국영화 시장에서 여주인공을 내세운 영화가 별로 없다.
김윤진(김)=“한국에서 특히 여배우가 이런(주인공) 역할을 맡기가 힘들지 않나. 솔직히 이런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다. 그래서 왔을 때 확 잡았다(웃음). 다른 배우가 나보다 빨리 결정할까 봐 바로 하겠다고 했다. 꽉 잡고 놓지 않았다. 하하.”
천우희(천)=“예전에는 그런 것 생각 안하고 영화에 출연했었다. 아니 아예 하질 못했다. 출연 그 자체만으로 급급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영화 제작 등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많아졌다. 시나리오가 재미있다고 제작 진행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 고민들을 내가 풀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설사 내가 더 큰 배우가 된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닌 듯하다.”
-할리우드 영화들에 비해 여자 캐릭터의 다양성이 부족한 것 아닌가.
김=“한계는 어디에나 다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여자 캐릭터가 할 수 있는 역할의 폭에서 다양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나처럼 40대가 되면 대부분 엄마 역할에 머문다. 미국도 모든 캐릭터가 백인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동양인을 위한 (주연)배역은 거의 없다.”
천=“여성 영화에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환경이 녹록하지 않다. 시나리오만 봤을 때 5,6년 전 받은 것과 1,2년 전 것의 여성에 대한 시각이 전혀 다르지 않더라. 여성이 일과 사랑 등에 대해서 하는 생각이 시대에 따라 다를 텐데 반영이 되지 않아 안타깝다. 내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도 커졌다.”
-그래도 이번 두 영화의 여성 캐릭터는 전형적이진 않다.
김=“40대와 60대의 미희를 각각 연기했다. 남편과 아들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25년 간 수감생활을 한 뒤 가석방되는 모습이다. 60대 미희는 후두암에 걸린 설정까지 있다. 젊음과 늙음을 좀더 절실하고 확실하게 구분해서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제안해 넣었다. 목소리 톤을 잡기가 꽤 힘들더라.”
천=“출연 제안을 한 번 거절했다. 시각장애인에,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이미지가 정형화된 느낌이었다. 주저했다. 그러나 남자 주인공 강수(김남길)와 로맨스가 0.0001%도 없다는 게 새로웠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런(로맨스) 게 있었다면 아마 선택하지 않았을 듯하다. 남녀 관계라는 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만 구분 지을 수 없지 않나.”
-스릴러와 판타지라는 영화 장르도 매력적이다.
김=“대한민국에서 이런 시나리오를 받아본 적이 없고, 상상도 못했다. 꽉 찬 느낌이었다. 단숨에 읽었다.”
천=“제안을 주저했을 때 (김)남길 오빠의 말이 와 닿았다. 우리나라 영화 현실을 꼬집으면서 중간영화, 허리영화가 없다고 하더라. 다양성영화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정형화된 역할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 한 번 내가 바꿔보자’는 도전의식도 생겼다. 예매율 1위를 했을 때는 너무 좋더라. 다행이다 싶었다.”
-60대 할머니와 시각장애인의 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김=“노인 역은 늘 고충이 있다. 전작 ‘국제시장’(2014)에서 이미 해봐서 노하우는 좀 있었다. 주름 등을 표현하기 위한 노인 특수분장은 3,4시간 걸린다. 그걸 지우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젊은 미희로의 분장이 어려웠다. 오죽했으면 달아오른 피부를 진정시킬 수 있게 휴식시간을 달라고 했을까.”
천=“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신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가 병원을 나와 바깥세상을 처음 봤을 때의 기분, 그 첫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아쉬운 건 그 때 미소의 시선으로 보는 장면이 하나라도 들어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여배우로서 이전 작품에서 아쉬운 점은 없나
김=“내가 출연한 미국드라마 ‘미스트리스’는 원래 동양인 캐릭터가 없었다. 내 역할은 백인여성 카렌 로즈라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내 오디션을 본 제작진이 카렌 로즈를 카렌 킴으로 바꿔 동양인으로 새롭게 만들었다. 미드 ‘로스트’의 제작자 J. J. 에이브럼스 같이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을 터다.”
천=“영화 ‘해어화’는 1940년대가 배경이지만 2000년대 상영되는 만큼 여성 관객들에게 공감이 될 만한 생각과 문화를 담았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재능 있는 신여성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이면(고민 등)을 더 보여줬으면 했다. 또 극중 두 여자의 우정이 꼭 사랑 때문에 파괴된 것처럼 그려진 것도 아쉬웠다.”
-김윤진은 ‘월드스타’, 천우희는 ‘믿고 보는 배우’란 수식이 따른다.
김=“세상에서 가장 싫은 게 오디션이다. 나름 미국 배우들 중에 가장 오디션을 적게 보는 배우임에도 말이다. 내게 들어오는 역할은 대부분 주연급이라 대본이 10페이지는 넘는다. 전문직 캐릭터가 대부분이라 대사도 전문용어가 많다. 밤을 새야 한다. 자랑 같이 들리겠지만 사실 오디션이 벌써부터 스트레스다. 한국에선 모성애 연기를 많이 보여줬으니 이젠 치열한 악역에도 도전하고 싶다. ‘차이나타운’의 김혜수씨 같은 역할에 꼭 기회가 닿았으면 한다.”
천=“엄청 부담된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믿고 보는 배우가 됐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출연하는 영화가 작품성이 있다는 건지, 대중적인 흥행성을 보는 건지 말이다. 하지만 ‘한공주’ ‘곡성’ 등에서 굴곡 있고 사연 많은 연기를 하다 보니 그런 쪽의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온다. 영화계 분들이 나의 다른 면은 궁금하지 않은가 보다(웃음). 밝고 예쁜 역할도 하고 싶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역보다는 인간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부분에 더 끌리는 것 같다. 누굴 탓하랴(웃음).”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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