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서래마을 파인 다이닝 '스와니예'에서 열린 '식목일 팝업'. 팝업 식당답게 자유롭고 쾌활한 분위기 속에 이준(왼쪽) 셰프가 참석자와 대화하고 있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4월 5일 저녁, 서울 서래마을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스와니예’에서 ‘식목일 팝업’이 열렸다. 매년 4월 초 열리는 스와니예의 연례행사다. 2015년 ‘만우절 팝업’에는 20가지 넘는 음식을 타파스 스타일로 차려 위트와 실력을 뽐냈고, 2016년 식목일 팝업에는 거리 음식을 선보여 단골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올해 팝업에선 다섯 가지 국수 요리를 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의 가요가 배경 음악으로 흐르며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2017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에서 별 한 개를 받은 이 레스토랑이 만우절이나 식목일을 기념할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하는 것이다.

이 레스토랑을 이끄는 오너 셰프 이준씨의 설명. “한 직원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장난스러운 이벤트입니다. 즐기는 데에 의의를 두지요. 주방 스태프들이 각자 독자적으로 요리를 창안해 내는데 레스토랑 식구들 뿐 아니라 단골 손님들도 즐거워해요. 평소보다 굉장히 자유롭고 시끌벅적한 분위기고요.” 평소에도 그리 엄숙하지는 않은 이 레스토랑은 이날 따라 한층 더 흥성거렸다. 하룻밤의 일탈 같았다. 손님과 요리사, 서비스 직원들의 어깨에 한결 같이 들썩임이 묻어났다. 다음날 신기루는 물러가고 스와니예는 평소의 유쾌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으로 돌아갔다.

'스와니예'의 5일 '식목일 팝업'에서 선보인 국수 요리. 오직 이 날을 위해 주방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 개발한 메뉴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팝업 식당’의 과감하고 창의적인 시도

팝업 식당의 장점은 한 마디로 ‘치고 빠지기’, 즉 신기루 같은 일회성에 있다. 단 한 번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보통 식당에서는 시도할 수 없는 엉뚱한 발상이 용인된다. 그 자유로움 안에서 돌출적 창의성이 튀어나온다. 아직 식당을 열지 못한 젊은 요리사들에게도 팝업 식당은 실력을 검증 받을 수 있는 즐거운 무대다. 외식을 자주 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매일 가는 식당과 비슷비슷한 음식 대신 색다른 장소에서 색다른 맛을 보는 기회다. 팝업 식당이 뜨는 것은 최근 10년 사이 음식 문화가 성장한 덕분이다. 저변이 확대된 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또 다른 미쉐린 서울판 스타 셰프 임정식씨의 팝업 식당은 더 엉뚱하다. 임 셰프의 ‘본진’은 서울 청담동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정식당’이다. 2월 12일, 19일, 3월 5일, 12일 네 차례에 걸쳐 그는 서울 홍대 앞과 여의도에서 곰탕을 끓여 팔았다. ‘곰탕 팝업’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 행사는 실상 새로운 식당을 열기 위한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 임 셰프는 숙원 사업으로 언젠가 해외에 곰탕 전문점을 내고 싶어한다. 서울 뿐 아니라 전남 나주 등의 곰탕 전문점을 드나들며 연구하고 있다. 국물 요리 특성상 소량을 끓이면 제대로 된 맛을 뽑아볼 수 없기 때문에, 연구개발(R&D) 차원에서 팝업 식당을 열어 많은 양을 끓여 본 셈이다. 실제 그는 매번 다른 재료 구성과 조리 방법을 시험하며 곰탕 조리법을 완성시켜 나갔다.

1일 열린 '아이뿨유 팝업'에서 임정식 셰프가 내놓은 쌀국수.

‘곰탕 팝업’은 1일 만우절엔 베트남 쌀국수(Pho) 팝업, 이름하여 ‘아이뿨(Pho)유’로 이어졌다. 뉴욕의 ‘정식당’에서 스태프밀(식당 직원들을 위한 음식)로 즐겨 끓이던 베트남 쌀국수 맛을 서울 팬들에게 선보인 일종의 팬 서비스다. 하루 만에 팬과 호기심 많은 식객 500여명이 다녀갔다.

‘맛있는 책방’ 장은실 대표가 임 셰프와 손잡고 ‘아이뿨유’ 운영을 맡았다. 장 대표가 주도하는 ‘맛있는 이벤트’의 첫 번째 행사였다. “지난해까지 기획한 팝업 식당은 주로 해외에서 초빙한 유명 셰프의 갈라 디너 형태였어요. 15만원부터 30만원까지 고가의 가격이 책정될 수밖에 없어서 대중적 행사로 만들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습니다.” 장 대표는 팝업 식당의 장점을 이렇게 꼽는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들은 파인 다이닝 틀에서 벗어날 기회가 별로 없어요.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팝업 식당에서는 요리사들이 평소 해보지 못했던 과감한 시도를 자유롭게 해볼 수 있지요.” 장 대표는 팝업 식당이 손님들에게도 득이 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레스토랑의 문턱이 높게 느껴졌던 이들에게는 셰프의 음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기회이자 한 음식의 기준점을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라며 “요리사에게는 자아 실현의 기회, 손님들에게는 외식 형태의 또 하나의 선택지”라고 했다. 장 대표는 다양한 분야 요리사들과 손잡고 색다른 팝업 식당을 기획할 예정이다.

2일 열린 '딤섬 팝업'에서 정지선 셰프가 내놓은 홍소우육면(왼쪽)과 딤섬 요리.

‘맛있는 이벤트’의 두 번째 팝업 식당은 2일 열린 ‘딤섬 팝업’. 정지선 셰프가 요리사로 나섰다. 그는 중국 요리 유학을 거쳐 특급호텔 중식당 주방에서 오랜 기간 일한 요리사다. 정 셰프는 “시중에서 흔히 맛볼 수 없는 맛을 보여주려 노력했다”며 “장기인 딤섬과 사천식 홍소우육면을 곁들여 낯선 맛을 소개했고, 흑식초 소스, 쌀피(량펀), 피두부 등 흔히 쓰이지 않는 재료를 사용해 손님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데에 의미를 뒀다”고 말했다. 60명씩 3차례에 걸쳐 예약을 받은 이 팝업 식당 역시 매진 사례로 마무리됐다.

해외 셰프와 콘텐츠 기업의 이색 팝업 식당

단 16명의 손님을 위한 프라이빗한 팝업 식당 '조셉스 코리아'에서 조셉 리저우드(가운데) 셰프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해외 출신 요리사의 팝업도 눈에 띈다. 지난해 태국 방콕에서 ‘가간(Gaggan)’을 운영하는 가간 아난드 셰프나 일본 도쿄 ‘레페르베상스(L'effervescence)‘ 시노부 나마에 셰프의 갈라 디너와는 다른 맥이다. 영국 런던 출신의 조셉 리저우드 셰프는 1월부터 ‘셰프의 밤’ ‘조셉스 코리아’ ‘골목 고메’ 등 팝업 식당을 주말마다 열고 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적을 옮기기 전, 세 달 가량 생긴 휴식기에 한국에서 팝업 식당을 운영 중이다. 전국을 누벼 체득한 한식 조리법을 자신의 요리 세계관에 접목해 특별한 음식을 서울 식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리저우드 셰프의 팝업 식당 기획과 운영을 돕고 있는 ‘시어터브릿지’의 김지은 대표는 “지난해 다른 셰프의 스태프로 한국을 찾았던 리저우드 셰프가 한식에 매료돼 벌인 일”이라고 말했다.

팝업 식당 '열정도와 딩고의 함께 식당'의 맥앤치즈를 변형한 맥볶이. 메이크어스 제공

음식 콘텐츠 디지털 스튜디오 ‘메이크어스’의 ‘딩고 푸드’ 역시 6~8일까지 ‘열정도와 딩고의 함께 식당’이라는 팝업 식당을 운영한다. 가장 디지털적인 음식 콘텐츠가 현실의 아날로그 음식이 되는 부조화의 조화다. 팝업 식당을 O2O(Online to Offlineㆍ온라인과 오프라인 연계 서비스) 전략으로 활용한 셈이다. 장소도 부조화의 재미를 끌어낸다. 딩고 푸드의 푸드 디렉터 이상림씨가 주방을 지휘하는 이 팝업 식당은 서울 원효로 일대를 청년들의 놀이터로 만든 외식 기업 ‘청년장사꾼’과 손잡고 ‘열정도 고깃집’을 장소로 선택했다. 21세기적인 고층 주상복합 건물 사이에 섬처럼 가라앉은 1950~1960년대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딩고 푸드 총괄 프로듀서 하정석씨는 “600만건 이상 조회수를 기록한 ‘삼겹살과 혀르가즘 소스’, ‘맥볶이’, ‘간장 비빔 냉라면,’ ‘화분 티라미수’ 등 딩고 푸드의 인기 음식 콘텐츠를 현실에서 맛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혼밥, 혼술, 패스트 프리미엄이 음식 트렌드로 지목되고 있는데, 팝업 식당을 통해 혼자 먹는 음식이 아닌 같이 먹는 음식의 의미를 환기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네 가지 음식과 간단한 칵테일 등 주류가 제공되는 이 팝업 식당은 1만2,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젊은 층의 미각적 호기심을 공략한다. 현재 예약은 마감됐지만 현장 판매분이 소량 남아있다.

페이스북 통해 열리는 정규 팝업 식당

정기적으로 열리는 팝업 식당들도 생겼다. 팝업 식당의 전성시대다. 팝업 운영 장소와 시간은 페이스북을 통해 공지된다. 이산호 셰프의 부페식 팝업 ‘힐링 셰프’는 2014년 12월부터 매달 열리고 있다. 이 셰프는 ”밤 늦게 퇴근하는 요리사는 굉장히 외로운 직업”이라며 “업무가 아닌 놀이와 여가로 요리를 즐기고 요리사들끼리 모여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힐링 셰프는 요리사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큰 호응을 얻어 100여명이 참석할 정도로 커졌다. 매달 하나의 주제를 정해 참석자들이 재료를 함께 연구하고 조리를 시연하며, 요리대회를 열기도 한다.

김소희 셰프가 게스트로 참석한 '힐링 셰프'.

젊은 중식 요리사들의 모임 ‘열혈팬도’는 매달 말 일요일 밤에 팝업 식당을 연다. 왕병호 회장은 “점점 수가 줄어가는 중식 요리사들이 뭉쳐 패기를 보여주고 단합을 도모하는 자리이자 대중에게 중식을 더욱 널리 알리는 취지”라며 “이연복, 여경래, 여경옥, 진생용 사부님 등 선배 요리사들께서 아낌 없이 지원해주셔서 더욱 힘이 난다”고 했다. ‘한반도 식재료의 재발견-한 그릇에 담다’는 흔한 식재료를 재조명하고 잊혀져 가는 식재료를 알리는 취지로 열리는 팝업 식당이다. 올 3월부터 시작한 ‘맛연구회’는 매달 한 차례씩 하나의 식재료를 통해 농부를 만나고, 새로운 시도의 음식을 맛보는 팝업 식당 행사다. 이달 15일 열리는 두 번째 ‘맛연구회’에선 돼지고기를 주제로 경상북도 봉화의 ‘땅파는 까망돼지’를 탐구한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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