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 없이도 짜인 문ㆍ안 대결 구도
후보 전략보다 유권자 판단이 좌우해
‘정치 진화’라고 판단하기엔 아직 일러
5ㆍ9 대선 구도에 파란이 일고 있다. ‘요동’이니 ‘지각변동’이니 하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지지율 상승세가 무섭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독주체제가 어느새 ‘문ㆍ안 양강 구도’로 바뀌었다.
서울신문과 YTN이 엠브레인에 의뢰한 여론조사(4일), MBN과 매일경제가 리얼미터에 의뢰한0여론조사(5일), 중앙일보 자체 여론조사(4ㆍ5일) 등에서 안 후보는 33.2~34.9%의 지지율로 38.2~41.3%의 지지율을 보인 문 후보를 바싹 추격했다. 특히 가상의 양자 대결이나 3자 대결에서는 일부 문 후보를 앞지르는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일련의 여론조사 결과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데다 임의의 가상 대결 구도를 가지고 대선 향방을 점칠 수도 없다. 문 후보가 다자대결 구도에서 여전히 지지율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만 안 후보가 놀라운 속도로 문 후보를 추격, 나란히 30%대의 지지율을 보이며 이미 문 후보를 위협하기 시작했음은 분명하다.
안 후보의 지지율 상승 속도는 유례를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다. 3월 중순만 해도 15% 내외였던 지지율이 3월 말 20%대로 뛰어 도움닫기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며칠 사이에 30%대로 성큼 뛰었다.
그 배경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우선 보수층이 안심하고 표심을 기울일 만한 유력한 보수 후보가 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선에서 한 번도 겪어볼 수 없었던 상황이다. 보수 표심 일부는 어쩔 수 없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나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에 임시로 머물고, 일부는 스스로를 감추고, 나머지는 그나마 거부감이 덜한 안 후보를 차악(次惡)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민주당 경선이 문 후보의 압승으로 끝나는 순간 잠시 안희정 충남지사에 기대었던 중도 표심 일부가 안 후보에게 돌아왔다. 안철수ㆍ유승민ㆍ안희정 등으로 흩어져 관망하던 중도 표심이 안 후보에게 모여든 것은 국민의당 경선 흥행 성공과 무관하지 않다. 무미건조했을 국민의당 경선에 기름칠을 해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공이 컸다.
중도ㆍ보수 표심이 안 후보 지지율을 끌어올려 문 후보와 맞겨룰 구도를 만든 결과 못잖게 눈에 띄는 게 있다. 90년 3당 합당과 97년 DJP 연합 이래 역대 대선의 최대 변수가 돼 온 ‘정치공학’의 쇠락이다. 현재의 문ㆍ안 맞대결 구도는 탄핵정국 이래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스몰 텐트’니 ‘빅 텐트’니 하던 일체의 ‘천막론’과 무관하게 이뤄졌다. 안 후보는 한 번도 천막을 친 적이 없다. 또 유 후보의 완주 다짐이나 안 후보의 거듭된 공언에 비춰 새로 천막이 쳐질 가능성도 희박하다. 한동안 잦아들었던 천막론이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의 독자출마 선언을 계기로 고개를 들고 있지만, 호사가들의 가십일 뿐이다. 이미 내심의 목표가 저절로 이뤄져 더 이상 실질적 의미를 갖기 어렵다.
애초에 천막은 반문(反文)ㆍ비문(非文) 연대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문재인 대세론’에 대항하려면 도토리 후보들끼리 힘을 모으는 수밖에 없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한 정치 셈법이다. 특정 후보를 견제하려는 필연적 부(否)의 발상도 문제지만, 유권자를 정치공학 기법의 객체로 여기는 반민주적 발상이다. 유력 후보나 그 정당이 손을 잡기만 하면 지지자 대부분이 그대로 따라 올 것이라는 판단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정치전략이다. 오랫동안 후보의 자질이나 역량보다는 소속 정당, 후보의 정책보다는 생물학적ㆍ정치적 출신ㆍ성장 지역을 중시해 온 유권자들의 업보이기도 했다.
현재의 맞대결 구도는 그런 정치전략과 무관한, 유권자들의 자발적 선택의 결과다. 유권자가 정치 주체로서의 지위를 되찾았다는 점에서 커다란 질적 변화다. 대통령을 몰아낸 ‘촛불혁명’과 함께 정치진화가 엿보인다. 그러나 한 차례의 경험만으로 정치공학 시대의 종언이나 정치진화를 말하기는 어렵다. 대통령 파면이란 초유의 사건이 빚은 특수한 정치공간의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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