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에 가장 집요하게 관여
CJㆍ롯데 투자 현황도 일일이 챙겨
박근혜(65ㆍ구속) 전 대통령이 지금까지 알려진 정도보다 훨씬 더 깊숙이 포스코와 KT 등 민간기업 인사와 경영에 개입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그의 구속영장 청구서에서 밝힌 것처럼 헌법상 보장된 기업경영의 자유권을 침해한 정도를 넘어 사실상 자신이 ‘회장님’인 것처럼 기업들 위에 군림했던 것으로 보인다.
5일 한국일보가 단독 입수한 안종범(5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 39권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이 가장 집요하고 철저하게 개입했던 기업은 포스코였다. 그는 2015년 7월 당시 검찰 수사를 받던 포스코가 단행한 쇄신 인사와 관련, 이보다 한 달 전쯤부터 임원진 인사 방향 자체를 안 전 수석에게 시시콜콜 지시했다. 이에 앞서 2014년 3월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취임한 뒤,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 측근 3명이 포스코 자회사 대표나 홍보임원으로 채용된 과정에도 박 전 대통령의 ‘입김’은 불어넣어졌다. 수첩 39권을 확보했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한 관계자는 “포스코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개입 배후에 최씨가 있었다고 볼 정황들이 대단히 많았다”며 “특검 수사기간이 연장됐더라면 포스코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에 대한 수사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박 전 대통령의 범죄혐의에도 포함된 부분이지만, KT를 상대로 가한 인사채용 외압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최씨의 지인인 이동수씨와 신혜성씨를 KT 임원에 채용시키라고 안 전 수석에게 수 차례 반복해서 지시한 것을 넘어, 이들의 자리 마련을 위해 남규택 당시 마케팅본부장의 퇴직을 종용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남 본부장에게 ‘MB(이명박)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이기까지 했다.
박근혜정부에서 이른바 ‘찍힌’ 기업으로 분류되는 CJ그룹과 롯데그룹의 정부 사업 투자 현황을 세심하게 챙긴 사실도 수첩에 담겨 있었다. 대통령 지시사항을 뜻하는 ‘VIP’ 메모를 보면 유독 이들 기업이 참여한 사업인 K-컬처밸리나 K-푸드(food), 해외 역직구(전자상거래 수출) 활성화 등과 관련한 내용이 많았다. 청와대가 그에 앞서 롯데와 CJ 등에 거세게 투자 압력을 가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처럼 박 전 대통령이 ‘월권’에 해당할 정도로, 기업 경영에 관여하게 된 배경에는 아직도 1970~80년대에 머물러 있는 그의 인식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군사정권 시절 정치권력이 기업을 일일이 통제하고 주물렀던 ‘정경유착’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태에 대처하고 검찰 조사에 임한 태도를 보면 자신의 행위가 법적으로 왜 문제가 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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