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작은 노력이 모이면 언젠가 전세계 지도에 '일본해' 대신 '동해'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부산의 한 고등학생이 영국 언론사 홈페이지에 게시된 지도 속 '일본해(Sea of Japan)' 표기를 '동해(East Sea)'로 바로잡았다.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에서 활동하는 최현정(17ㆍ부산국제고 2년)양은 올해 초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더스택닷컴' 홈페이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해당 사이트는 전 세계 이슈와 뉴스 등을 소개하는 매체로, 지금까지 한국 관련 기사를 작성하면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해왔다.
이를 확인한 최양은 수차례 마틴 앤더슨 편집장 앞으로 정정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최양은 메일에서 "'일본해' 표기는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라며 "한국인에게 '동해' 표기는 일제에 부당하게 빼앗긴 바다 이름을 되찾는 중요한 일이다"고 주장했다.
더스택닷컴 측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최양은 같은 내용으로 메일을 세 번 보냈다. 결국 지난달 17일 해당 언론사는 "우리 기사가 혼란을 준 점에 대해 사과한다"며 "일본해 표기 사진을 동해로 수정했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이번 동해 표기 정정은 최양이 수십 차례 시도해 얻은 첫 결실이라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최양은 더스택닷컴 외에도 20여 개 사이트에 '일본해' 표기 수정을 요청했으나, 대부분 메일을 읽어도 답을 주지 않거나 담당자에게 전하겠다는 형식적인 답변만 받았다.
한국에서 가장 바쁘다는 고등학생이기에, 최양은 민간외교관 활동을 위해 포기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동해 표기 변경을 요청하는 메일을 몰래 보내면서, '내신 공부가 급한데 이걸 하고 있어도 되나?'하는 생각이 때때로 들기도 했다. 하지만 훗날 '외교관'을 꿈꾸는 최양은 "어떤 공부보다 꿈과 가까운 경험을 한 것 같다"며 웃으면서 말했다.
최양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겨우 한 건의 표기 정정을 이뤄냈을 뿐,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크에 따르면, 과거 3%에 불과했던 '동해' 표기는 개별 봉사자의 노력으로 현재 30%까지 늘어났다. 최양은 "'나 하나의 노력으로 뭐가 바뀌겠어?'라는 생각을 버리고, 남은 70%를 조금씩 고쳐나가면 세계지도 속에서 동해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최양의 다음 목표는 지도에서의 '동해 표기' 뿐 아니라, 약탈당한 문화재를 언젠가 되찾는 것. 최양은 "국외에 흩어진 문화재가 약 5만점이라고 하는데, 꼭 성공해 민간외교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지난달 28일, 김석준 부산시교육감은 "어른들도 하기 어려운 일을 했다"며 최양에게 교육활동 우수학생 표창장을 수여했다.
다음은 최양이 '더스택닷컴'에 보낸 메일 전문
안녕하세요, 저는 반크의 멤버인 최현정이라고 합니다. 더스택닷컴의 좋은 기사들을 읽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더스택닷컴에서 업로드한 세계지도에서 오류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바다를 '동해'가 아닌 '일본해'로만 표기한 것입니다. 이 문제를 사소한 일로 여길 수도 있지만, 한국인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동해'라고 표기하는 것은 단순히 이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부당하게 빼앗긴 바다의 이름을 되찾는 일입니다. 그 시기에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은 땅과 건물뿐만 아니라 한국의 많은 이름들을 잃었습니다. 심지어는 한국어를 사용하지도 못했습니다. 일본은 강제로 일본과 한국 사이에 있는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동해라고 표기하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를 정리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해당 지도는 영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노출되고 있습니다. 일본해라는 표기를 빼지 않더라도, 지도에 동해를 표기해 이 부분을 존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국제수로회의(IHO)와 유엔 지명 표준화 회의 등 국제 기구들은 이미 일본해와 동해를 함께 병기하는 것으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월드 아틀라스', '론리 플래닛' 등도 동해를 표기하고 있습니다. 더스택닷컴도 동해 표기를 검토해주셨으면 합니다. 만약 질문이나 정정할 내용이 있다면 다음의 이메일로 연락주세요. 당신의 작은 노력이 반크와 한국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이하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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