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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코끼리와 벼룩

입력
2017.04.0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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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직장에서 퇴직한 것이 정확히 지금 내 나이다. 만 55세. 회사마다 좀 차이가 있었겠지만, 그해 생일날부터 아버지는 회사에 다니지 않은 것이다. 우리 가족은 한동안 그 사실을 몰랐다. 어머니는 뒤늦게 알았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그래도 늘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은 채 어디론가 출근을 하셨다. 속도 모르고 아버지에게 용돈이나 책값을 달라고 했다. 돈을 주시면서 ‘좀 아껴 써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으로 상당 기간 생활비와 자식들의 학자금을 충당했을 것이다.

▦ 동창 모임에 나가 보면 벌써 퇴직한 친구들이 절반 가까이 된다. 임원을 하다가 퇴직을 한 경우가 많고 진급이 늦어져 아직 부장직급에 있는 친구들은 그래도 버티고 있다. 그래서 ‘조진조퇴 지진지퇴’(早進早退 遲進遲退)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앞서 가면 빨리 은퇴하고 천천히 가면 좀 더 버틴다는 얘기겠다. 또래들을 만나면 ‘인생 2ㆍ3모작’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대기업에서 퇴직한 부사장급 인사가 3년 치 봉급을 챙겼다는 얘기가 화제다. 족히 40억원은 되고, 세금도 회사가 내줬다는 소문이 있다.

▦ 좋은 학벌과 스펙을 가졌는데도 회사에 소속된 월급쟁이의 일상은 고달픈 경우가 많다. 반면 학창 시절 껄렁하던 친구들이 사업에서 성공한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그들도 쉽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사업이 망하고 집에 들어와 가족이 자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때’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는 가슴을 저민다. “자네들이 편히 월급쟁이 생활을 할 때 나는 부도를 수차례 경험했고, 십수 년간 뼈를 깎는 고생을 한 끝에 겨우 지금 자리에 와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래는 불확실하므로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취업 경험이 없는 20ㆍ30대 실업자가 11만2,000명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단 하루만이라도 회사에 다녀보고 싶다”는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는 저서에서 ‘코끼리와 벼룩’ 이야기를 했다. 코끼리는 정년이 보장되는 대기업, 정부 같은 조직이고, 여기서 떨어져 나오면 벼룩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두려워 말라고 조언한다. ‘100세 시대’에 코끼리에 붙어사는 것은 불가능하니 ‘1인 기업가’처럼 강인한 벼룩으로 성장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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