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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 백제 장인정신이 21세기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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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 백제 장인정신이 21세기 되살아났다

입력
2017.04.0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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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시 복암리 정촌고분 1호 돌방에서 2014년 12월 출토된 백제 금동신발의 복제품은 첨단과학기술에 힘입어 백제의 장인 정신을 되살려 낸다. 문화재청 제공
전남 나주시 복암리 정촌고분 1호 돌방에서 2014년 12월 출토된 백제 금동신발의 복제품은 첨단과학기술에 힘입어 백제의 장인 정신을 되살려 낸다. 문화재청 제공

백제의 장인 정신이 21세기에 부활했다. 2014년 12월 전남 나주시 복암리 정촌고분 1호 돌방에서 출토된 백제 금동신발이 첨단과학기술로 재현돼 백제의 화려하고도 정교했던 공예기술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됐다.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금동신발의 재료학적 특징과 제작기법을 밝히기 위해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하고, 전통 공예기법을 활용해 1,500년 전 백제 금동신발을 최근 복원해냈다고 3일 밝혔다.

2014년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백제 금동신발. 용 머리 장식을 갖추고 거의 완벽한 형태로 발견되기는 정촌고분 유물이 처음이다. 문화재청 제공
2014년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백제 금동신발. 용 머리 장식을 갖추고 거의 완벽한 형태로 발견되기는 정촌고분 유물이 처음이다. 문화재청 제공

연구소에 따르면 백제 금동신발은 공주 무령왕릉을 비롯해 고창 봉덕리, 고흥 안동고분, 공주 수촌리 등에서도 발견됐지만, 발등에 용 머리 장식이 있는 건 정촌고분 유물이 처음인 데다 거의 완벽한 형태로 보존됐다. 이 금동신발은 길이 32㎝, 높이 9㎝, 너비 9.5㎝로 발굴 당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발등 앞쪽의 화려한 용 모양 장식에다 발목 부분에는 금동판 덮개를 부착했다. 특히 바닥에 있는 도깨비 문양은 부릅뜬 눈과 크게 벌린 입이 특징으로, 연꽃 문양을 가운데에 두고 위아래에 2개가 묘사됐다. 연구소의 복제품은 여러 기술을 활용해 원본의 세세한 문양까지 되살려 냈다.

연구소는 금동신발의 재료학적 특징과 제작기법을 밝히기 위해 3차원입체(3D)스캔, 엑스레이, 컴퓨터단층촬영법(CT) 등 첨단 기법을 동원했다. 조사 결과 금동신발은 두께 0.5㎜의 구리판에 5∼10㎛(마이크로미터, 1,000 분의 1㎜) 두께로 순도 99%의 금을 입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재질에서 수은이 나와 수은 아말감 기법으로 도금을 했다는 결론도 내렸다. 금동신발 바닥과 옆판에 사용한 연꽃, 도깨비 등 문양은 백제의 금속공예기법 중에서도 난이도가 매우 높은 투조(금속판의 일부를 도려내는 것)기법과 축조(금속판에 쐐기 모양의 삼각형을 새긴 자국으로 선을 그려가는 것)기법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점도 밝혀냈다.

백제 금동신발을 복원하기 위해 전통 도금기법인 수은 아말감 기법을 사용했다. 3D 스캔 등 과학기술을 통해 금동신발에 수은이 사용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문화재청 제공
백제 금동신발을 복원하기 위해 전통 도금기법인 수은 아말감 기법을 사용했다. 3D 스캔 등 과학기술을 통해 금동신발에 수은이 사용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문화재청 제공

금동신발 복제품 제작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서 맡았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서 전달받은 정보를 활용해 도면설계부터 실제 완성품이 나오기까지 6, 7개월이 걸렸다. 복제작업을 맡은 이현상 연구원은 “신발이 너무나 아름다운 모양이라 그 자체로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정촌고분 금동신발은 전형적인 백제 양식을 띄고 있다. 신라와 백제의 금동신발은 양 옆과 바닥 3면을 어떻게 결합하느냐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신라는 측면에서 결합하지만 백제는 발등과 발 뒤쪽에서 결합한다.

정밀 계측으로 설계도면이 완성된 뒤 구리판을 재단했다. 용 머리 장식과 양 옆판, 바닥 판을 만들고 고정못 등 부속품을 제작했다. 그리고 전통기법을 활용해 문양을 표현했다. 문양의 도안을 새로 그리고 실제 작업을 하는 데 전체 복제 과정의 50% 이상이 소요됐다. 백제의 문양 수준이 높았다는 방증이다. 문양은 육안으로 보면 실선으로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정을 대고 쪼아 만든 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조밀하게 연결 돼 있다. 이 연구원은 “요즘처럼 컴퓨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연필이나 종이조차 없었던 시절에 동판에다 바로 한번에 작업을 했을 백제의 장인이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백제 금동신발의 연꽃 무늬. 정교하고 화려하다. 문화재청 제공
백제 금동신발의 연꽃 무늬. 정교하고 화려하다. 문화재청 제공

최근엔 전기도금을 사용하지만 조선시대 때까지만 해도 임금의 도장(어새)을 만들 때 수은 아말감 기법을 사용했다. 수은과 금가루를 혼합해 금속 표면에 바른 다음 365도 이상의 열을 가하는 기법이다. 수은은 금가루가 금속 표면에 붙을 수 있게 접착제 역할을 했다. 도금까지 마친 뒤 각 판을 조립해 금동신발을 완성했다. 진품의 무게는 510g이었지만 복제품은 460g이다. 진품은 부식되면서 부식물이 생겨 실제보다 무거워졌다는 설명이다. 백제 금속공예의 정수로 평가 받는 정촌고분 금동신발 복제품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상설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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