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ㆍ산은과 첫 만남 후
“기초자료 요약본 보여준 뒤 회수
집도 안 보여주고 집 사라는 꼴”
“국민연금이 채무재조정 수용 땐
2700억원 평가손실” 추산도
산은 “자료 재작성해 제공” 해명
대우조선해양 회생의 열쇠를 쥔 국민연금이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에 단단히 뿔이 났다. 채무재조정에 동참할 경우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데도, 당국이 상황 판단에 필요한 기초자료조차 주지 않고 압박만 거듭한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연금이 당국의 채무재조정안을 받아 들이면 평가손실이 약 2,700억원에 달할 거란 추산도 제기됐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달 30일 대우조선ㆍ산은과 첫 만남을 가진 뒤 31일 투자관리위원회를 열었다. 투자관리위원회는 국민연금의 투자에서 원리금 상환이 힘들어지면 연금이 어떻게 대처할지를 논의하는 기구다. 현재 국민연금은 당국으로부터 대우조선에 투자한 회사채 3,900억원의 절반은 대우조선 주식(출자전환)으로 받고 나머지는 상환 만기를 3년 더 연장해 줄 것을 요청 받은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정부의 권유대로 채무재조정에 동참하면 채권회수율이 53%에 이르지만, 대우조선이 초단기 법정관리(P플랜)에 들어가면 43%에 그칠 거란 논리로 국민연금을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31일 투자관리위원회에서 논의의 방향조차 정하지 못했다. 산은에 요청한 대우조선의 외부 실사보고서 자료 등을 전혀 받지 못해 판단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게 국민연금의 설명이다. 산은은 국민연금과 처음 만났을 때 실사보고서 요약본만 잠시 보여준 뒤 이마저도 도로 가져갔다고 한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보통 집을 살 때도 수차례 들러 살지 말지를 고민하는데, 지금은 수천억원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기본자료조차 보여주지 않고 압박만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아직 정부가 제시한 채무재조정과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비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내부에선 반대 기류가 거세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대우조선 회사채는 모두 분식회계가 이뤄진 2012년과 2014년에 발행된 만큼 국민연금으로선 명백하게 금융사기를 당한 셈인데, 정부에선 “국민연금이 잘 판단할 것”이라는 식으로 압박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산은은 조만간 국민연금에 모든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산은 관계자는 “사채권자 집회가 4월 17일부터 열리는 만큼 아직 여유가 있고, 시중은행에 제공한 자료를 국민연금에 그대로 줄 수 없어 재작성하다 보니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도 “연금 입장에선 화가 날 수 있는데 앞으로 대우조선과 몇 차례 더 만나면 간극을 좁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이번 주 초 대우조선으로부터 노조가 파업 없이 고통 분담에 참여한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받고 7일까진 시중은행에게서도 채무재조정 동참 확약서를 받을 예정이다. 하지만 7,000억원의 고통 분담 요구를 받은 시중은행들은 “산은과 수출입은행의 추가 희생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산은은 추가 감자에 나서고 수은은 대우조선으로부터 사들이는 영구채 금리를 더 낮추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를 둘러싸고 시중은행과 정부 간 이견 차가 상당하다. 정부 관계자는 “추가 감자는 어렵지만 금리 인하는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회 보건복지위 천정배 의원이 국민연금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대우조선 회사채 투자액 3,887억원어치 가운데 정부의 채무재조정안을 수용할 경우, 예상손실액은 2,682억원으로 추산됐다. 이를 추산한 나이스신용평가는 “출자전환 50%는 전액 손실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2,682억원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해 국민연금이 입은 손해로 제시했던 1,388억원의 2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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