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욕이 교차하는 대한민국 검찰의 역사에서 짧지만 강력한 인상을 남긴 강골 검사 중 하나가 함승희(66) 강원랜드 대표이사다. 1980~1990년대 ‘거악’과 맞선 ‘특수부 검사’, 드라마 ‘모래시계’와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실제모델로도 알려진 주인공이 카지노의 최고경영자로 일한 지 2년을 훌쩍 넘겼다. 그동안 조직개혁과 경영혁신에 이어 중독 예방 캠페인에 본격적으로 나선 그를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원랜드 서울사무소에서 만났다. 그는 “카지노 업체가 중독 예방을 외치는 게 ‘병 주고 약 주냐’는 비아냥을 사겠지만 공기관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고 중독 예방과 치유의 컨트롤 타워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004년 노무현대통령 탄핵심판 때에는 민주당 의원으로서 탄핵소추위원을 맡았고, 2008년부터는 ‘포럼 오래’를 조직해 박근혜 대통령 탄생에도 기여하기도 했던 그는 최근의 탄핵사태와 대선정국에 대한 정치적 견해도 거침없이 밝혔다.
-도박업을 하는 주체가 중독 예방활동을 한다는 게 모순이다. 캠페인에 나선 배경이 뭔가?
“그런 지적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심각한 중독으로 인한 폐해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국가적 차원에서 다뤄야 할 때가 됐다. 강원랜드가 공기업인 이상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규제 대 피규제 구도, 즉 도박과 관광산업 육성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강원랜드는 양 측면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수익에 연연하지 않는 컨트롤타워로서 효과적인 도박중독 예방 캠페인을 펼 수 있다. 행위중독 예방과 힐링 기능을 강원랜드의 대표 사회공헌사업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
-게임과 스마트폰 중독문제까지 다루는 이유는?
“근래 들어서 스마트폰, 게임은 폐해가 더 크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 이러한 중독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의 특징은 직접 마주보고 하는 대화를 싫어하고, 기기를 상대로 하는 소통에 익숙하다. 이러한 중독은 온갖 패륜적 범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강원랜드의 중독 예방 노력과 중독자 치유 시설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강원랜드 오픈 1년 만인 2001년에 KLAAC(중독관리센터)를 설립했다. 16년 이상 운영하다보니 노하우가 쌓였다. 최근엔 내국인 도박 법제화를 추진하는 베트남이나 일본의 공무원들이 중독자 관리 방식을 배우려고 강원랜드를 잇따라 방문하고 있다. 강원랜드는 하이원리조트의 자연환경을 활용한 복합힐링공간으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강원랜드 카지노 매출이 지난해에만 전년보다 600억원이 증가했는데.
“카지노 출입자를 억제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 중이다. 4월부터 카지노 과다출입자 제한을 강화할 방침이다. 2개월 연속 월 15일 출입하거나 2분기 연속 분기 30일을 초과하는 경우 1개월에서 최대 3개월까지 출입을 제한하기로 했다. 현재 95%에 이르는 카지노 매출의존도를 낮추고 리조트 컨벤션사업 등 비카지노 매출비중을 올려 70대 30 수준으로 만들겠다.”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한 주요 무대가 평창올림픽 관련된 것이었다. 강원랜드에도 손을 뻗쳤을 법한데 한번도 거론되지 않았다.
“문화체육 분야와 관련이 있으므로 개입할 가능성이 높았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나도 의아했다. 생각해 보니 취임 초창기에 있었던 일 때문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사장으로 와서 임원을 뽑을 당시 청와대가 3, 4명 정도의 명단을 추천한 적이 있다. 청와대에서 내려온 명단을 살펴보다 보니 적절하지 않은 인물이 포함돼 있었다. 인사수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강하게 따졌다. 청와대에 그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고 들었다. 아마 이런 일이 최씨 개입을 막는 효과가 있었지 않았나 싶다.”
-2000년 DJ의 권유로 민주당 당적을 가지고 처음 정계로 들어왔고, 후엔 박근혜 대통령 출범에 기여하기도 했다. 지금 시점에서 박 전대통령에 대해 평가한다면.
“기본적으로 나는 보수적인 견해와 입장을 바꾼 적이 없다. 국회의원 4년 내내 나는 한나라당보다 더 보수적인 목소리를 내곤 했다. 한나라당조차 동의하는 테러방지법을 내가 반대하기도 했다. 반대로 자금세탁방지법 같은 경우엔 여야가 함께 반대하던 걸 내가 법사위에 있을 때 통과시키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다가 낙선하고 탈당했다. 민주당 의원시절 고영구 국정원장 청문회 때 ‘우리 국정원은 휴민트(인적 정보) 자원이 전부로, 미ㆍ일의 지원 없이는 정보활동이 힘들다. 그런데 당신과 같이 정보기관에 대해 반감만 가지고 있는 아마추어가 정보기관의 수장이 되면 미ㆍ일과의 공조가 가능하겠습니까?’라고 일갈하니 후보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이 모습을 본 박근혜 의원이 ‘왜 우리 당에는 저런 의원이 없어요?’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그게 인연이라면 인연이 됐다. 그 후에 박 전 대통령을 만나보니 처음엔 신중하다는 인상을 받았으나 갈수록 실체에 대한 분석, 그 분석을 기초로 한 판단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 직접 창설한 ‘포럼오래’는 박 전 대통령의 싱크탱크라는 소문도 많았는데.
“포럼오래는 오늘(이 시대)의 문제를 분석하고 내일(미래)의 대한민국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시작한 모임이다.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권 10년의 반작용으로 공(권력)이 진보 측으로 튀어갔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하지만 진보가 큰 역량을 갖추지 못해 다시 공이 보수쪽으로 왔을 때, 그 공을 제대로 잡아 역사를 진전시킬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겠다는 게 우리 포럼의 목적이다. 포럼의 출발 때 박근혜 외곽단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지만 10년간 경륜을 쌓았고,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포럼은 정권과 완전히 분리되며 독자성을 찾았다.”
-2016년 9월, 펴낸 책 ‘세상을 바꿔라’에서 ‘개혁의 죄인, 개혁의 원수, 개혁의 병신’이라는 제목으로 발간사를 내기도 했다. 여기서 현 정권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했는데 여전히 유효한가.
“구한말 유길준 선생이 ‘서유견문’에서 썼던 글 중에 ‘개화의 죄인’ ‘개화의 원수’ ‘개화의 병신’이라는 표현을 썼다. 당시 개화는 요즘의 개혁과 비슷한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개혁한다 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개혁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중심 인물들이 무슨 개혁을 했는가? 오히려 박정희 전두환 시절 관료들이 훨씬 개혁적이었다. 꼴통 보수시절이 더 개혁적이었다. 문제는 언젠가는 반동이 온다는 것이다. 반동이 왔을 때 튀어나오는 공을 누가 잡느냐가 문제다. 10년 동안 보수가 너무 못해서 진보로 그 공이 튀어왔다. 진보가 못하면 다시 보수로 공이 튀어올 것이다. 그들은 과거의 보수세력보다 더 나은 사람들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임기가 올해 11월까진데, 향후 계획은?
“포럼을 통해 능력있고 신념있는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강원랜드 사장을 하며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됐고 수많은 인맥을 얻게 됐으니 이를 이용해 포럼에서 역할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3년 뒤 국회의원 선거에서 개인적인 소망이지만 개헌이 돼 대통령 선거가 함께 이루어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포럼에서 만든 정책이 반영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심해보고자 한다. 그게 가능하다면. 어떤 역할이든 해보고자 한다” 최진환 선임기자 choi@hankookilbo.com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 프로필
▦1951년 강원 양양 출생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1982년 서울지방검찰청 형사부, 특수부 검사
▦1992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2007년 박근혜 대통령후보 클린선거대책위원장
▦2008년 사단법인 ‘포럼 오래’ 설립
▦2014년 11월 제8대 강원랜드 대표이사 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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