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좀비?’ 감사할 뿐”
‘벚꽃 좀비’. 가수 장범준(28)이 밴드 버스커버스커 멤버로 활동하던 2012년 낸 노래 ‘벚꽃 엔딩’을 일컫는 말이다. 해마다 봄만 되면 곡의 인기가 되살아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국내 6개 주요 음악 사이트의 음원 소비량을 집계하는 가온차트에 따르면 ‘벚꽃 엔딩’은 2016년까지 5년 연속 연간 음원 순위(스트리밍 기준) 100위 안에 들었다. 2010년대 나온 곡 중 유일하다. 세계를 ‘말춤’으로 들썩인 가수 싸이의 히트곡 ‘강남스타일’(2012)도 이루지 못한 성과다. ‘벚꽃엔딩’의 음원은 지난해에만 약 2,940만 번이 소비됐는데, 해마다 불과 100만~200만 번 사이를 오갈 정도로 사용량 감소 추이가 느리다. 사람들이 ‘때’가 되면 ‘벚꽃 엔딩’을 꾸준히 찾아 그의 통장에도 저작권료가 수북하게 쌓인다. 곡을 만든 장범준에 ‘벚꽃엔딩’이 ‘연금’이 된 이유다.
‘벚꽃 엔딩’은 벚꽃 개화 시기가 되자 올 봄 음원 차트에 다시 꽃을 피웠다. 2일 오후 3시 기준으로 멜론에서 11위를, 네이버 뮤직에서 2위를 기록했다. “저도 매년 순위를 볼 때마다 깜짝 놀라요.”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영화 ‘다시, 벚꽃’(감독 유해진) 기자간담회에서 장범준은 “(나도) 이해 못하는 부분”이라며 멋쩍어했다.
“그저 감사할 뿐이에요. ‘벚꽃 좀비’, ‘벚꽃 연금’이란 말도 욕이 아니라 칭찬처럼 들리고요.”
‘벚꽃 엔딩’ 어떻게 나왔나 보니
장범준은 스물 두 살이 되던 2011년에 ‘벚꽃 엔딩’을 작사, 작곡했다. 홍안의 사내는 어떻게 벚꽃과 골목길(’골목길 어귀에서’,2012) 같은 소재로 곡을 만들게 됐고, 그는 데뷔 전 어떤 청년이었을까. 장범준은 ‘다시, 벚꽃’에서 상명대 천안캠퍼스를 찾아간다. “여기서 돗자리를 펴고 소주잔을 기울였는데, 벚꽃이 떨어지면 시를 읊고 술을 마셔야 했죠.” 장범준이 캠퍼스 내 우뚝 솟은 벚나무를 가리키며 대학 신입생 시절 추억을 꺼냈다. “이 골목길이 그(노래 속) ‘골목길’예요.” 버스커버스커 1집 속 ‘골목길 어귀에서’ 등은 그가 살던 대학 인근 안서동 자취방 골목길이 배경이다. 장범준이 “첫 사랑과 전 여자 친구의 집이 모여 있던 곳”이라며 익살을 떠는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버스커버스커 1집 미공개 곡을 모은 앨범 ‘1집 마무리’에 실린 ‘소나기’(2012)도 그가 자취방에서 창 밖으로 후두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다 썼다.
버스커버스커 활동 중단한 이유
노래의 꾸준한 인기와 달리 밴드는 큰 부침을 겪었다. 장범준은 2013년 버스커버스커 2집을 낸 뒤 돌연 활동 중단을 선언해 충격을 줬다. “음악적으로 부끄러웠어요.” 장범준은 ‘다시, 벚꽃’에서 부족한 연주 실력에 대한 열등감으로 밴드 활동을 중단했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가수에 보컬 실력이 중요한 만큼, 밴드에 연주 실력은 팀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완벽한 녹음 과정을 거쳐 버스커버스커 1,2집에 실린 노래처럼 공연에서 똑같이 연주할 수 없는데 대한 음악인으로서의 자책으로, 밴드 활동 중단은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세 멤버가 각자 음악적 밑거름을 더 단단히 한 뒤 모이자고 결정을 내린 배경이었다.
만화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던 장범준은 좋아하는 음악을 1년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밴드를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버스커버스커로 얻은 성과는 실력에 비해 너무 버거웠다. 장범준은 “멤버끼리 불화 때문에 활동을 중단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멤버끼리 계속 연락하며 술도 마시고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장범준은 “버스커버스커가 해체한 것은 아니다”란 말도 강조했다.
밴드 활동을 중단한 뒤 장범준은 인디 음악인들과 한강변 등으로 나가 거리 공연을 했다. 2015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건물에 녹음실을 마련하고, 연주를 할 수 있는 공간 ‘반지하 카페’를 열어 틈틈이 관객들과 만났다. 6일 개봉하는 ‘다시, 벚꽃’은 장범준이 솔로 1집이 큰 반향을 얻지 못한 뒤 지난해 솔로 2집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촘촘하게 좇는다. 장범준에게는 ‘음악적 사명감’이 새 고민 거리로 찾아왔다.
“제 주위에 취미로 음악을 하면서도 좋은 곡을 만드는 사람이 많아요. 전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극히 평범한 제가 다른 사람들이 동경하는 인물이 됐죠. 그래서 그 위치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겠다는 고민을 해요. 남들이 힘들게 돈을 벌 듯 저도 날마다 연습실에 출근해서 연습해야 하는 게 아닌가란 고민도 하고요.”
휴대폰으로 사진 찍는 것도 부담스러워
MBC에서 ‘휴먼다큐 사랑’ 등을 연출한 유 감독은 “장범준의 독특함”에 끌려 그의 음악적 여정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고 했다. 2011년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3’에서 준우승해 이름을 알린 오디션 스타는 미디어 노출을 극도로 꺼린다. 그가 취재진 앞에 공식적으로 선 건 밴드 활동을 중단한 뒤 4년여 만에 처음이다. 장범준은 “혈액형도 소심한 A형”이라며 “휴대폰으로 사진도 안 찍는다”고 말했다. 그를 알아본 팬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 사진 촬영이 부담스러워 사인을 해주는 게 장범준이다.
CJ E&M의 매니지먼트를 받다 홀로 선 그는 무명 가수처럼 활동한다. 솔로 2집을 낸 지난해까지만 해도 장범준과 외부의 유일한 연결 통로는 그의 어머니였다. 장범준의 새 앨범 소식은 “30대가 돼서야” 가능할 듯싶다.
“지난해까진 열등감에 사로 잡혀 절 몰아 붙였는데, 작업 과정도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은 좀 쉬고 있습니다. 하하하.”
‘다시, 벚꽃’에선 ‘인간 장범준’의 성장 스토리도 담겼다. 딸 조아를 키울 땐 서툰 아버지지만,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가장 역할을 하며 어머니와 남동생을 챙기는 장남의 모습은 듬직하다. 영화에 실린 미공개 곡을 듣는 재미는 덤이다. 장범준과 그의 창작 방식에 관심을 두고 있는 관객이라면 흥미로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에겐 다소 긴(99분) 기록물이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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