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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8할은] “꿈을 갖게 됐다, 내 지독한 역마살의 종착역”

입력
2017.04.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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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삶을 바꾸는 순간이 있습니다. 유명 문화계 인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들의 인생에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남긴 작품 또는 예술인을 소개합니다.

배우 김상호는 “2001년 초연한 연극 ‘인류 최초의 키스’ 는 뒤늦게 배우의 꿈을 심어준 작품이다”고 말했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배우 김상호는 “2001년 초연한 연극 ‘인류 최초의 키스’ 는 뒤늦게 배우의 꿈을 심어준 작품이다”고 말했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고교 자퇴→공장→복학, 또 자퇴

반항과 방황으로 얼룩진 청년기

다시 찾은 대학로서 만난 작품

술도 끊고 체력도 기르고…

처음으로 욕심이란 게 생겼다

나에겐 꿈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찢어지게 가난했던 환경 탓도 있을 것이다. 경북 경주에서 4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나에게 부모님의 지원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반항은 절정에 다다랐다. ‘난 왜 이렇게 가난한가’ ‘도대체 왜 태어났을까’ 등의 고민으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렇게 상업고등학교를 1년 다니다 스스로 학교를 그만뒀다. 영화 속에선 현실에 순응하는 소시민처럼 보이는 내가 삐뚤어진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하면 놀라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반항아 그 자체였다.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싸움질이나 하고 다녔던 시절이었다. 집에 있는 것조차 고통이었다.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무작정 대구로 넘어가 안경 공장에 들어갔다. 80년대에는 지방에 공장이 많았다. 그래서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정도를 안경 공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오래 버티지 못하겠더라. 일이 힘든 게 아니라 퇴근할 때마다 마주치는 내 또래 학생들 때문이었다. 버스정류장에서 삼삼오오 학생들이 모여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부러웠다. ‘저게 내 모습인데…’하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계기였다.

다시 학교를 찾았을 땐 친구들은 고3이었다. 난 1학년으로 복학해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학교를 비웠던 1년의 세월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세상의 때가 묻어버린 것이다. 6개월 만에 반 아이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내 발로 학교를 다시 나왔다. 다시 공장에서 일했다. 울산의 화학공장에서 일하다가 건설 현장에서도 일하며 바쁘게 살았다. 건설 현장 일(일용직)이 끝날 때면 경주 집으로 돌아와 있곤 했다. 무슨 짐승처럼 건설 현장과 집을 오가며 다녔다.

이웃집 아저씨가 목수였는데 졸업도 않고 변변한 일자리도 없던 내가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아저씨는 나를 불러 목수 일을 가르쳐줬다. 성실하게 따라다녔다. 이때까지도 내 삶에 꿈이나 희망은 존재하지 않았다. 꽃다운 스무 살이었지만 꿈을 그리기엔 현실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군대를 갔다. 강원 원주에서 방위병으로 복무했다. 마음 한 구석에서 공부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복무 중 검정고시를 치러 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획득했다. 꿈만 같았다. 아마도 그때부터 어떤 작은 희망을 본 것 같다.

제대한 이후 먹고살 일이 걱정이었다. 경기 부천에서 공장을 다니던 사촌 매형이 나를 그곳에 소개했다. 3개월쯤 다녔을 때 어렴풋이 가슴에 묻어두었던 불씨가 되살아났다. 고교에 복학했을 때 했던 ‘나중에 유명해지고 돈 많이 벌려면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송내 공장을 뛰쳐나와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부모님의 반대는 학교를 자퇴했을 때처럼 나를 붙잡아 놓지 못했다. 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큰형님까지 “상호야, 네가 돈이 있냐 빽이 있냐? 그렇다고 학연, 지연, 혈연이 있냐? 뭐하러 서울에 가려고 하느냐”며 나를 막아 섰다. “제가 다 그것을 만들게요. 서울 가서”라고 대꾸했다. 연극하러 서울 간다고 하니 형 누나들의 걱정이 하늘을 찔렀다. 물론 나중에는 생활비, 방세 보내주며 도와주셨지만. 그렇게 대학로로 향했다. 1993년 서울 대학로에 올라와 극단 청우에 짐을 풀었다. 포스터를 붙이는 일이 첫 임무였다. 몇 년간 대학로를 뛰어다녔더니 ‘종로고양이’를 시작으로 ‘오필리어’ ‘지상으로부터의 20미터’ 등의 연극에 참여했다. 본격적으로 연극인, 아니 배우가 되는 일만 남은 듯 보였다.

하지만 병이 다시 도졌다. 역마살 낀 내 팔자가 어디 갈까.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던 것처럼 앞뒤 보지 않고 극단을 나와버렸다. 당시 여자친구(현 아내)가 있던 원주로 갔다. 신문배달, 우유배달하며 돈을 벌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여 월세 15만원인 상가 건물에서 라면 가게를 열었다. 대학교 앞이라 비싸게 팔 수 없어 라면 값 2,000원에 밥은 공짜로 줬다. 비싼 해산물을 넣은 라면을 2,000원에 팔았으니 이문이 남을 리 없었다. 월세를 밀릴 수 없어서 가게를 하면서도 새벽 신문배달은 계속 했다. 그렇게 평균 4시간만 자면서 생활했지만 가게는 망해버렸다. 다시 일용직 노동자가 됐다. 아파트 건설 현장을 다니며 쉴 새 없이 일했다. 어느 날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더니 미치도록 연극이 그리워졌다. 다시 무대에 서고 싶었다. 500만원 들고 다시 대학로로 달려갔다. 그렇게 다시 만난 연극 무대가 바로 ‘인류 최초의 키스’(2001)다.

이 작품을 하면서 처음으로 꿈이라는 걸 갖게 됐다. 진정한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꿈 말이다. ‘인류 최초의 키스’는 나와 함께 오달수, 주진모 선배가 첫 주자였다. 청송보호감호소의 죄수 4명을 통해 사회보호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그늘을 끄집어 낸 연극이다. 강간범 학수 역에는 오달수 선배가, 20년간 감방 생활을 한 동팔 역에는 주진모 선배가 맡았다. 나는 조직폭력배 살인범 상백 역할이었다. 상백은 살인범이었지만 감방 내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죄수나 교도관들과 교감하는 캐릭터였다. 그러다 교도관에게 살해를 당하는 극적인 연기도 해야 했다. “연기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처음으로 연기에 욕심이 생겼다.

연극계에서 일요일은 대게 술을 마시는 날이다. 월요일은 정기적으로 쉬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의 밤을 새워 술을 마시기 때문에 화요일 정식 공연까지 영향을 미쳤다. 체력이 달려 연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호평을 받고 있던 연극에, 또 나 스스로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없었다. 단호하게 술을 끊었다. 월요일은 북한산에 올라 체력을 길렀다. 어찌 보면 진짜 배우가 되는 과정이었다. ‘인류 최초의 키스’는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 가미된 작품이다. 비록 연기였지만 진지하게 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러나지 않는, 죄수들을 향한 폭력을 관객들과 함께 아파하고 고민했다. 내 속에서 사명감 같은 게 들끓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치열하게 연기했다. 연극은 재공연이 이어졌을 정도로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지금까지 공연되는 몇 안 되는 ‘장수 연극’이 됐다.

최근 내가 출연한 영화 ‘보통사람’도 ‘인류 최초의 키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 1987년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하려는 정부에 맞선 신문사 기자 추재진을 연기했다. 추 기자는 진실을 알리려는 사명감이 투철한 기자이지만 고문을 받고는 사망한다. 같은 시기 고 박종철 학생의 고문치사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무자비한 폭력에 싸늘한 주검이 되는 상백과 재진은 닮은꼴이다. 지금 시대가 평범한 작품들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나 역시도 참으로 모질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혹자는 “많은 경험은 배우가 되기 위한 자양분”이라고 위로한다. 어쩌면 그것이 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배우 김상호의 말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정리=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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