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타니아 여신’은 영국의 수호신이자 상징이다. 한 손엔 삼지창, 다른 한 손엔 유니언잭(영국 국기)이 그려진 방패를 들고 나라를 지키는 이 젊은 여성은 영국 동전에 수백년 넘게 새겨질 만큼 오랜 사랑을 받아 왔다. 영국민들은 이제 테리사 메이(63) 총리가 21세기 브리타니아가 돼 주길 바란다. 44년간 동고동락한 통합의 울타리, 유럽연합(EU)을 벗어나기 위한 ‘브렉시트(Brexit)’ 여정이 눈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메이 총리는 29일 이혼합의서인 탈퇴 서한을 EU 쪽에 보냈다. 세계 5위 경제대국의 명운을 걸고 앞으로 2년 동안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그래서 불확실성과 변수가 넘쳐나는 험로에 발을 내디딘 것이다. 메이는 지난해 6월 부결을 점치고 호기롭게 EU 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쳤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낙마하자 영국의 미래를 이끌 구원투수로 간택됐다.
불과 9개월의 일천한 지도자 경력에도 영국민들은 메이에게서 1980년대 영국병을 치유한 ‘철(鐵)의 여인’ 마거릿 대처를 본다. 영국의 홀로서기를 극렬히 반대하는 다른 EU 회원국들의 파상공세에 맞서 “나쁜 협상(bad deal)을 할 바에야 안 하는 게(no deal) 낫다”는 총리의 일성에 안도했다. 얼마 전 런던 차량 테러가 터지자 브렉시트 협상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증오와 악의 목소리는 우리를 갈라 놓게 하지 못할 것”이라며 눈을 부릅뜬 여성 총리의 단호함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메이 앞에는 만만치 않은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 EU를 대표해 “떠나려면 이혼합의금 72조원부터 내놔라”고 으름장을 놓는 독일의 여장부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한 판 승부를 겨뤄야 한다. 2019년 3월 영국을 유럽의 왕따로 남게 할지, 아니면 재도약을 견인한 구세주가 될지 메이의 리더십은 진짜 시험대에 올랐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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