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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오일 때문에 내쫓긴 말레이시아 오랑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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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오일 때문에 내쫓긴 말레이시아 오랑우탄

입력
2017.03.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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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진의 동물과 함께 떠나는 세계여행] ⑧

말레이시아 세필록 오랑우탄 구조센터에서 어미 오랑우탄이 새끼와 함께 밧줄에 매달려 있다.
말레이시아 세필록 오랑우탄 구조센터에서 어미 오랑우탄이 새끼와 함께 밧줄에 매달려 있다.

비행기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내려다 본 광경은 온통 푸르렀다. 알고 보니 다양한 식생으로 이루어진 우림이 아니라 팜오일(Palm Oil)을 얻기 위해 심어 놓은 팜나무 단 한 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팜오일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식물성 기름이다. 과자, 초콜릿, 비누, 세제 등 수많은 제품에 들어간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대부분을 생산하는데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이들 지역에 팜오일 농장을 만들면서 팜오일 생산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팜오일을 생산하기 위해 사라지는 밀림은 아시아 유일한 대형 유인원인 오랑우탄의 서식지다. 사실 팜오일 때문에 오랑우탄의 서식지가 사라져간다는 이야기는 들은 지 오래였다. 일부 동물원과 보호단체는 오랑우탄을 살리기 위해 팜오일이 들어간 제품을 구매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팜오일 프리(Palm oil-Free)제품은 찾기가 어렵다. 말레이시아를 뒤덮은 팜나무들의 모습을 보노라니, ‘이런 거대한 산업의 확대를 막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오랑우탄이 마치 개발로 인해 내몰린 철거지역 주민처럼 느껴졌다. ‘과연 오랑우탄은 저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제국주의 시대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벌목은 영국에게 많은 수입을 주는 산업이었다. 주석을 캐고 고무를 빼내기 위해 그들은 지역민의 삶의 터전이던 맹그로브 숲을 파괴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이 물러나고 자원이 부족해지자 정부와 대기업은 파괴된 맹그로브 숲에 팜나무를 심고 팜오일 산업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는 전 세계 팜오일의 40%를 수출하고 있다.

팜오일의 홍수 속, 오랑우탄의 삶을 엿보기 위해 보르네오섬 사바 주의 산다칸을 찾아갔다. 세필록 오랑우탄 구조센터(Sepilok Oranutan Rehabilitation Center)와 열대우림 디스커버리 센터(Rainforest Discovery Center)에서 오랑우탄을 볼 수 있다고 들었다.

말레이시아 사바 주 세필록 오랑우탄 구조센터에서 한 오랑우탄이 나무에 매달려 과일을 먹고 있다.
말레이시아 사바 주 세필록 오랑우탄 구조센터에서 한 오랑우탄이 나무에 매달려 과일을 먹고 있다.

현지 안내인에게 팜오일이 오랑우탄과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물어 봤다. 오랑우탄은 매일 높은 나무에 둥지를 만들어 잠을 자는데 팜나무는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팜나무는 적어도 산소를 만들고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주니 공장을 짓는 것보다 나은 게 아니냐는 말도 덧붙였다. 이 산업에서 나오는 이익의 대부분은 대기업이 가져가고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정말 극히 일부일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행히 사바 주는 법적으로 면적의 60%를 밀림으로 보전한다고 한다. 그 밀림 한 편에 세필록 오랑우탄 구조센터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은 바바라 해리슨(Babara Harrison)이라는 영국인이 만들었다. 영국의 맹그로브 숲 파괴로 인해 서식지를 잃은 오랑우탄들을 또 다른 영국인이 구한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밀림은 팜오일 생산을 위한 팜나무 숲이 되어가면서 오랑우탄의 서식지가 사라져가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밀림은 팜오일 생산을 위한 팜나무 숲이 되어가면서 오랑우탄의 서식지가 사라져가고 있다.

하루 두 번 먹이 주는 시간이 있어 찾아가 보았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먹이터가 있었지만 위쪽에 밧줄이 있어 오랑우탄들이 사람들 머리 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오랑우탄을 만져서도 안 되고 먹이를 줘서도 안 된다.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 속에 드디어 주인공이 등장했다. 각자 새끼를 품에 안은 어미 두 마리와 몇 마리의 새끼들이었다. 먹이는 바나나와 파파야 두 가지였다. 야생에서 다양한 과일을 찾아 먹게 하려고 일부러 종류를 제한한다고 한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어미를 잃거나 다친 오랑우탄들은 치료와 보살핌을 받으며 나무에 매달리는 법, 천적을 피하는 법, 먹이를 구하는 법 등 밀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들을 익힌다. 구조센터는 1964년 설립된 후, 760마리가 넘는 오랑우탄을 구조해 80%이상을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사바에서는 이렇게 돌아간 오랑우탄들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헬리콥터를 이용해 주기적으로 오랑우탄의 새 둥지를 찾아 개수를 센다. 사바에는 1만5,000마리 정도의 야생 오랑우탄이 산다고 한다.

세필록 오랑우탄 구조센터에서 2㎞ 떨어진 열대우림 디스커버리 센터에서 나무에 앉아있는 야생 오랑우탄.
세필록 오랑우탄 구조센터에서 2㎞ 떨어진 열대우림 디스커버리 센터에서 나무에 앉아있는 야생 오랑우탄.

구조센터를 나와 2㎞ 떨어진 열대우림 디스커버리 센터에서 드디어 야생 오랑우탄을 만났다. 25m 높이의 전망대보다 더 높은 곳에서 어미와 새끼가 한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이동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생각보다 거리가 먼 지, 한 참 나뭇가지를 잡아당기다 포기했다.

북극곰을 위한 빙하가 녹듯, 오랑우탄이 쉴 수 있는 나무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지금도 팜오일 수요는 날로 늘고 있다. 하지만 바바라 해리슨이 구조센터를 만들고 사바 지역이 오랑우탄들의 서식지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것처럼,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 또한 사람들의 노력과 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법에 있다고 믿는다.

글·사진=양효진 수의사.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동물원 동물큐레이터로 일하고, 오래 전부터 꿈꾸던 ‘전 세계 동물 만나기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시작했다. 동물원, 자연사박물관, 자연보호구역, 수족관, 농장 등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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