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하락에 따른 경제난으로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대법원이 야권이 장악한 의회를 해산시킨 뒤 스스로 입법권을 대행하겠다는 판결을 내렸다. 삼권분립 원칙이 무너지고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1인체제가 공고화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30일(현지시간) “법원에 대한 의회의 경멸이 있는 한 입법권은 (대법원 산하) 헌법위원회나 법률 수호를 위해 지정된 기구에 의해 직접 대행된다”고 선고했다. 대법원이 판결을 내린 명분은 지난해 8월 의회가 선거법 위반으로 정직된 의원 3명을 취임케 해 대법원에 경멸을 보였다는 것. 그러나 이는 지난 2015년말 총선에서 의석 3분의 2를 차지한 중도우파 성향의 야권연대 민주연합회(MUD)가 좌파 통합사회주의당(PSUV) 소속 마두로 대통령에 대해 탄핵ㆍ국민소환 등 퇴진을 추진하자 친 마두로 성향인 법원이 방해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판결 직후 훌리오 보르헤스 국회의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쓰레기 판결”이라며 "니콜라스 마두로(대통령)가 쿠데타를 벌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군은 더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며 “국민처럼 경제 위기의 어려움을 함께 겪는 군인들이 봉기해야 한다”고까지 호소했다. 야권은 1일부터 가두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반면 정부 측은 의회가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부결권을 행사해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고 주장한다. 앞서 중도 우파 성향인 야권은 극심한 경제난 등을 이유로 좌파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국민소환 투표를 추진했으나 대법원 등이 반대해 투표가 사실상 무산된 바 있다.
베네수엘라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반미주의자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2013년 암으로 사망하자, 당시 부통령이던 마두로가 권력을 승계했다. 그렇지만 극심한 경제난으로 곧바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고 의회를 장악한 야당과 사사건건 대립하며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경제난에 대해 우파인 야권은 좌파 정책을 이어 온 마두로 정권을 그 주범으로 지목한 반면 마두로 대통령은 이를 미국이 배후에 있는 야권과 재계의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은 집권 대통령이 의회와 갈등을 빚을 경우 계속해서 대통령을 지지하는 판결을 내려왔다.
미 주류 언론들은 베네수엘라가 사실상 '1인 독재' 체제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했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권위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노골적 독재”라고 비판했다. CNN방송은 “집권당이 3권을 모두 장악한 셈”이라고 해석했다. 미 국무부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라고 경고했으며 브라질 외무부는 “헌법 질서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한때 세계 최대 석유 매장국가로 주목받았던 베네수엘라는 심각한 경기침체가 4년째 이어지면서 식량 부족 사태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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