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도의적 책임지고 사퇴”에
대검선 “고려 사항 아니다” 일축
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구속 수감된 가운데 구속영장 청구 결정을 내린 김수남 검찰총장은 착잡한 심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가 5개월째 진행됐고, 이들과 공범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증거 역시 충분히 확보한 상태였던 만큼 구속영장 발부는 예상이 가능했지만, 전직 대통령이 법의 심판대에 서는 비극이 반복돼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심경을 드러내듯 김 총장은 이날 출근길 박 전 대통령의 기소 시점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말 없이 집무실로 향했다.
앞서 김 총장은 지난 27일 수사팀과 대검 간부들, 검찰 출신 원로들의 의견을 들은 뒤 영장 청구 최종 결정을 내렸다. 당시 김 총장의 부친 김기택 전 영남대 총장 시절부터 이어진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악연까지 맞물려 여러 추측이 나왔지만 “법과 원칙”을 언급하면서 영장 청구 쪽으로 기울었다는 해석이 나왔었다.
이제 관심은 김 총장의 거취문제다. 과거 권력형 비리 수사가 검찰총장 사퇴로 마무리돼 온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김기수 전 총장도 1997년 8월초 한보 사건 재수사 과정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구속한 뒤 임기를 한 달 남기고 물러났다. 임채진 전 총장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직을 내려놨다.
이런 탓에 정치권 일각에서 자신을 임명한 전직 대통령을 구속한 김 총장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요구가 일었지만 대검은 “사퇴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대검 관계자는 이날 “임명권자를 구속했다고 사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다”고 말했다. 임명권자인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다고 해서 총장직을 내려놓는다면 수사의 성역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더욱이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선거관리의 총 책임자인 검찰총장 자리가 공석이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판단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총장 스스로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임기를 채우지 않고 물러나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다는 법조계 안팎의 지적도 적지 않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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