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 시리아 외교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시리아 반군 세력을 지원해온 미국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축출을 대 시리아 정책 우선순위로 두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30일(현지시간) 아사드 대통령 축출이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 정책 우선순위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헤일리 대사는 기자들에게 “아사드를 제거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더 이상 우리 우선순위가 아니다”라며 “어떻게 일을 해결해야 할지, 시리아 국민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 누구와 함께 일해야 할지 검토하는 게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이어 버락 오바마 전 정부를 겨냥해 “전 행정부가 했던 대로 아사드 문제에 반드시 집중할 필요는 없다”고도 주장했다. 폴리티코는 헤일리 대사 발언이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은밀히 시작된 미국 시리아 정책 변화를 공개적으로 예고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헤일리 대사의 발언은 30일 터키를 찾은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발언과 맞불려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틸러슨 장관은 아사드 대통령을 제거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강경 발언이 나오리라는 예상과 달리 “아사드 대통령의 지위는 시리아 국민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헤일리 대사 발언이 트럼프 정부의 대 시리아 정책을 반영하는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시리아를 군사적으로 지원해온 러시아 입장에 기우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미 워싱턴 소재 중동연구소의 란다 슬림 연구원은 헤일리 대사의 발언에 대해 “정책 변화를 의미하기보다는 오바마 전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은밀하게 추진했던 것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사드 대통령이 2011년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하자 처음에는 아사드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시리아 온건 반군 지원에 나선 뒤로 미국 관리들 사이에선 아사드를 조기에 제거하는 게 쉽지 않다는 회의론이 제기됐다. 존 켈리 전 국무장관은 2015년 아사드는 제거해야 하지만 그 시기는 협상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임기 후반 아사드 축출 전략보다는 러시아와 함께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는 데 주력했다.
반면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아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시리아 반정부 세력은 아사드 대통령이 현재나 미래에 시리아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데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시리아 평화회담에 반정부 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한 파라 알아타시는 미 백악관과 국무부가 시리아 문제와 관련해 모순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IS 퇴치에만 집중하지 말고, 러시아에 압력을 가하고 반군을 감독하면서 주도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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