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국에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아이들은 EAL (English as an Additional Language) 학생들로 구분되는데, 영국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한 반에 평균 다섯 명에 한 명꼴로 EAL 아이들이 있다. 일례로 초등 준비학년(reception)에 있는 필자의 둘째 아이 반에는 중국 아이들만 4명이나 된다. 이 아이들에 대한 영국 초등학교의 영어 교육을 지켜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아이들의 영어 사용에서 나타나는 문법과 발화(發話) 실수에 대해서 전혀 지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아이들이 영어로 말을 하려고 하는 시도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이며 고무적으로 받아들인다.
사실 어린 아이들은 서로에 대해 별로 편견이 없다. 다른 말을 쓴다고, 영어를 좀 어색하고 이상하게 한다고 서로 선을 긋거나 하지도 않는다. 이 시기 아이들은 영어를 놀이 언어로서 처음 익힌다. 친구들하고 같이 놀기 위해서 영어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말을 배우는 데 더 할 수 없는 좋은 조건이 된다. 아이들은 틀린 영어라도 씩씩하게 말하는 것을 배우고, 자신의 말에 대해 자랑스러운 마음도 잊지 않는다.
16년 전 영국으로 온 나는 한국에서 영어를 잘 하는 편에 속했다. 그런데, 막상 영국에 오고 나니, 세미나나 수업시간에 말을 꺼내고 입을 여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나보다 영어 공부에 투자를 안 했을 동유럽계 출신 청소부 아줌마가 나보다 더 자신감 있게 영어를 말하는 것을 보고 쇼크를 먹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이 내게 부족한 것은 ‘씩씩한 마음’ 이었다는 점이다.
한국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영어 공부에 시간과 열정을 투자하며 질 높은 교육을 받지만, 하나같이 자신은 영어를 잘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이 한국어가 영어와 특별히 달라서거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을 배우는 능력이 뒤지거나, 교육을 잘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영어는 어렵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내 영어는 문법에 맞지가 않다’ ‘나는 영어 점수가 낮다’ 등으로 표현되는 소위 사회 심리적인 외국어 두려움증(Foreign Language Anxiety)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두려움증의 중심에 소통 중심이 아닌, 시험 중심, 문법 중심의 영어 교육이 있다고 본다.
말이란 소통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세계인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지, 문법과 발음이 100%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제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영국의 EAL아이들을 보면 그 씩씩함이 정말 놀라울 때가 있다. 몇 가지 구조, 몇 가지 단어밖에 아는 게 없지만, 이를 십분 활용해 자신감 있게 표현한다. 거기에 풍부한 바디 랭귀지를 보태 그 나이에 불편함이 없는 의사소통을 할 줄 안다. 이렇게 “편안한” 마음이 먼저 생긴 다음에 아이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 영어를 말과 몸에 익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의 말에 대해 어른들의 잣대로, 문법의 기준으로 실수를 지적하고, 고쳐주려고 하다가는, 자칫 아이에게 두 번째 언어에 대해 주눅을 들게 할 수 있다. 말은 무엇보다도 즐겁게 배워야 한다. 실수를 할까 봐 주눅이 든 아이들은 언어에 자신감을 잃고 입을 닫아버리기 쉽다.
나는 아이들이 씩씩한 마음으로 말을 하고, 문법의 실수로 마음 졸이지 않게 하는 영어교육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어 교육의 양과 질을 개선하는 것만큼이나 어린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 씩씩한 마음, 또 이 씩씩한 마음을 믿어 주고, 보듬어 주어 편안한 마음이 되게끔 이끌어 주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지은 케어 옥스퍼드대 한국학ㆍ언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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