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31일 구속됐다. 전직 대통령으로선 역대 세 번째다. 그는 40년 지기이자 “힘들었던 시절 곁을 지켜준 사람”인 최순실(61·구속기소)씨와 같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된다. 구속기한이 내달 19일까지이고, 내달 17일부터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점을 고려해 기소는 그 전에 이뤄질 전망이다.
강부영 서울중앙지법 영장 전담 판사(43·사법연수원 32기)는 31일 오전 3시쯤 증거 인멸 등의 우려가 있다는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여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이 '한 푼도 개인적으로 받은 적이 없다'고 항변해온 박 전 대통령의 영장을 발부한 것은 그와 최씨 사이의 공모 관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는 최씨 혼자 경제적 이익을 누렸다고 해도 범행 계획의 수립, 실행 단계에서 공모 관계가 성립한다면 법리적으로 '공동정범'인 박 대통령도 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역대 전직 대통령 중 혐의 가장 많아
박 전 대통령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제3자뇌물수수 포함),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 강요미수, 공무비밀누설 죄목에 걸쳐 13개 범죄 혐의를 받는다. 이는 구속된 역대 전직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다.
앞서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5년 11월16일 재임 당시 대형 국책사업 발주등과 관련해 기업인 30명으로부터 2,359억9,6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되면서 헌정 사상 첫 전직 대통령 구속 사례가 됐다. 같은 해 10월 19일 박계동 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시작된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은 다음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수사에 착수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이후 중수부가 노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율곡사업의 일환인 진해 해군잠수함기지 건설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50억원을 받는 등 7차례에 걸쳐 240억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을 밝혀내면서 수사 28일 만에 구속으로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 구속 후 17일만인 12월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과 비자금 혐의 등으로 안양교도소에 구속 수감됐다. 검찰은 12월 1일 전 전 대통령 측에게 다음날 오후 3시까지 출석하라고 통보했지만, 전 전 대통령은 2일 오전 9시 서울 연희동 자택 앞에서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다. 이에 검찰은 3일 새벽 이수만 서울지검 수사1과장과 검찰수사관 9명을 내려 보내 전 전 대통령을 고향 자택에서 체포해 구속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이듬해 4월 17일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 형을 확정받았지만, 1997년 12월 22일 특별사면되면서 약 2년여의 수감생활을 마쳤다.
최순실과 같은 구치소… 재회하나
구속된 박 전 대통령은 서울구치소로 호송돼 수의로 갈아입고 독방에 수감된다. 40년 지기이자 '비선 실세'로 자신의 영향력에 힘입어 이권을 챙긴 혐의로 앞서 구속된 최순실(61·구속기소)씨와 구치소에서 마주칠 수도 있는 상황이라 관심이 쏠린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자 최씨를 가리켜 '힘들었던 시절 곁을 지켜준 사람'으로 표현하며 친분을 인정했다. 하지만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범죄 혐의에 있어선 철저히 선을 그어 왔다. 반면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이나 검찰 출석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 때문에 이런 상황에 처했다는 생각에 눈물을 짓거나 변호인에게 걱정하는 마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같은 구치소에 수감되면 얼굴을 마주치거나 검찰 조사·법원 재판 때 같은 호송차에 탈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론 공범이면 말 맞추기 방지 등을 위해 마주치지 않도록 하는 게 원칙이다. 교정 당국의 결정이나 당사자 요청에 따라 두 사람이 다른 구치소에 머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서울구치소엔 최씨 외에도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5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이번 사건의 주요 피고인들이 수감돼있다.
다음 타깃은 우병우·대기업
박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한 검찰은 SK, 롯데, CJ 등 삼성 외에 다른 대기업이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 등에 출연한 자금을 뇌물로 볼 수 있는지를 우선 수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기업은 총수 사면, 면세점 인허가 기회 등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재단 출연 등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따라서 이들 기업의 출연 행위가 박 전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해 제삼자인 두 재단에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가 수사의 초점이 될 전망이다.
검찰은 우병우 전 수석과 관련된 의혹 수사에도 이미 착수했다. 해경이 세월호 참사 때 구조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에 관해 광주지검이 2014년 수사했는데 우 전 수석이 철저한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있다. 검찰은 당시 수사팀을 이끌던 윤대진(53· 25기) 부산지검 2차장검사(당시 광주지검 형사2부장)로 부터 이와 관련한 진술서를 최근 확보했다.
검찰은 29일 우 전 수석이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주도로 추진된 '스포츠 4대 악 신고센터·합동수사단'의 요직에 측근을 앉히려 한 혐의, 우 전 수석 주도로 민정수석실이 청와대 요구에 따르지 않은 공무원을 감찰하는 등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도 수사 중이다.
검찰은 가급적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에 주요 의혹을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수사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을 중간에 석방하지 않으려면 늦어도 다음 달 19일 이전에 기소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 만기는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과 인접해 있으며 검찰은 다음 달 중순쯤을 1차 시한으로 잡고 수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한국일보 웹뉴스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