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떴다 ‘청년음식’... 뜬다 전통시장

입력
2017.03.3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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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용기에 깔끔하게 포장해주고 1인용으로 작은 포장도 해 주는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의 '무침 프로젝트 홍어무침'. 류효진 기자
플라스틱 용기에 깔끔하게 포장해주고 1인용으로 작은 포장도 해 주는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의 '무침 프로젝트 홍어무침'. 류효진 기자
낡은 시장 풍경 속에 들어선 망원시장 젊은 호떡집 '시베리아 호떡'. 류효진 기자
낡은 시장 풍경 속에 들어선 망원시장 젊은 호떡집 '시베리아 호떡'. 류효진 기자

서울 시내 주말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마포구 망원시장에는 최근 새로운 점포 두 곳이 생겼다. ‘무침 프로젝트 홍어무침’ ‘시베리아 호떡’이라는 발랄한 간판을 센스 있게 달았다. 시식해보고 구매할 수 있는 개운한 홍어무침은 플라스틱 용기에 깔끔하게 포장해주고 1인용으로 포장도 해준다. 쾌활하게 이야기를 건네며 바로 바로 구워 파는 호떡은 유달리 더 고소하고 달콤하게 느껴진다.

점포도 음식 차림새도 튀지만 사장님들도 상당히 튀는 존재다. 주변 상인들에 비해 무척 젊은 청년들이다. ‘무침 프로젝트 홍어무침’ 전희진 사장은 응암동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 식당 딸이다. 어머니의 식당에서 배운 홍어무침 비법과 몇 해간 일을 도우며 익힌 장사 기술로 망원시장에 점포를 내 기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대박’을 맛보고 있다. 1년간 준비한 보람이 있다. ‘시베리아 호떡’ 김정한 대표 역시 까치산역과 목동남부시장에서 호떡 장사를 하다가 망원시장으로 터전을 옮겼다. 두 청년 상인이 망원시장에 온 까닭은? “상권이 좋기 때문”이다.

허술한 슬레이트 지붕이 곳곳 골목을 뒤덮은 노후한 시장, 과일박스가 적재된 풍경 사이로 세련된 인테리어의 카페가 있다. 동대문구에서 경동시장 일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만든 ‘청량休카페’는 시장 속 이질적 풍경이다. 이혜숙 대표는 “소비자들의 휴식공간인 동시에 상인들의 사랑방”이라며 “경동시장은 노령화된 시장이지만 젊은 소비자들이 와서 쉬어갈 수 있는 장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카페는 동대문구 마을공동체 주민들과 함께 만든 제철과일청이 들어간 차와 상급 원두를 사용한 커피를 저렴(2,000원대)하게 판매하고 있다.

마포구 망원시장에 들어선 또다른 청년 점포, '시베리아 호떡'은 원래 양천구에서 성업 중인 점포로 더 번성 중인 상권을 찾아 자리를 옮겼다. 류효진 기자
마포구 망원시장에 들어선 또다른 청년 점포, '시베리아 호떡'은 원래 양천구에서 성업 중인 점포로 더 번성 중인 상권을 찾아 자리를 옮겼다. 류효진 기자
경동시장 '청량休카페'의 테라스. 과일 상자가 쌓여 있고 지게차가 오가는 청과물 창고 건물 한 켠에 자리했다. 동대문구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젊은' 공간이다. 류효진 기자
경동시장 '청량休카페'의 테라스. 과일 상자가 쌓여 있고 지게차가 오가는 청과물 창고 건물 한 켠에 자리했다. 동대문구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젊은' 공간이다. 류효진 기자

시장 노령화, 그리고 회춘의 움직임

시장이 늙었다. 중소기업청이 조사한 전통시장 상인 평균연령이 56세다. 사회의 세대 구조와 주 소비층 생활 패턴이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엔 힘에 부친 ‘연세’다. 20, 30대 한창 소비할 나이의 소비자들에게는 전통시장의 먹거리가 멀게만 느껴진다. 성동구에 살고 있는 30대 직장인 정보람씨는 "요리가 익숙지 않고, 할 시간도 없는 젊은 층에게는 시장 식재료가 되레 낯설다. 소량 구매도 쉽지 않아 마트를 찾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전통시장에서도 젊은 소비층에게 익숙한 먹거리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전통시장에 청년들이 들어와서 파는 품목은 대부분 걸어 다니며 먹을 수 있는 주전부리나 간식류, 포장 음식 등으로 마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청년이 파는 음식은 청년 세대 식생활을 공략하는 것들로 이뤄져 있다.

자연 도태 과정에 들어선 전통시장 내 빈 점포에 청년 점포를 유치해 시장에 젊은 피를 수혈하려는 중소기업청의 ‘청년상인 창업지원’은 올해로 세 번째 해를 맞았다. 전국 총 20개 시장, 218개 점포를 지원한 2015년 첫 해 사업은 현재 78%의 점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10일 발표한 올해 지원대상은 시장 16곳, 137개 점포로 서울 명일전통시장, 남대문시장, 수유시장, 뚝도시장, 대림시장, 부산 용호삼성시장, 대구 서부시장, 경기 과천새서울프라자, 강원 속초관광수산시장, 전남 영광매일시장, 경북 황금시장, 경남 양산남부시장 등이 선정됐다. 서울시 역시 전통시장 ‘회춘’에 힘쓰고 있다

눈에 띄는 ‘세대교체’ 바람

서울시 지원사업으로 출발한 정릉시장 곳곳에는 발품 팔아 찾아갈 만한 맛집이 들어섰다. 피자, 파스타 등을 판매하는 식당 ‘파스타펍’, 수제청 전문점 ‘율리아청’, 사탕과 캐러멜 전문점 ‘땡스롤리’, 큐브 식빵과 컵케이크 전문점인 ‘빵빵싸롱’이 입점한 후 시장 풍경이 변했다. 서울시 전통시장 빈 점포 사업에서 상인들의 컨설팅을 담당 중인 ICEO실전마케팅연구소의 김상미 대표는 “청년 점포가 개점한 후 젊은 고객층과 가족 단위 방문객이 늘었다며 상인들이 반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청년 점포들의 매출 역시 겨울을 안정적으로 나고 상승세를 잇고 있다.

구로시장에 위치한 청년 점포 ‘청춘 주유소’는 이희준 대표가 전국에서 선별한 맛 좋은 참기름을 파는 편집 매장이다. 청춘 주유소 제공.
구로시장에 위치한 청년 점포 ‘청춘 주유소’는 이희준 대표가 전국에서 선별한 맛 좋은 참기름을 파는 편집 매장이다. 청춘 주유소 제공.

구로시장 ‘영프라쟈’는 첫 해는 구로구에서, 이듬해는 중소기업청에서, 그리고 올해는 서울시에서 지원을 받고 있다. 구로시장에 자리한 참기름 편집매장 ‘청춘 주유소’의 이희준 대표는 시장에서 쌓은 5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전국에서 손꼽을 만한 맛있는 참기름을 선별해 판매한다. 지역마다 깨맛도 다르다. 깨의 산지까지 표시하는 건 고급 백화점에서나 볼 법한 마케팅 기술이지만 ‘청춘 주유소’는 이를 시장에서 활용하고 있다. 이 대표는 “청년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통행자가 하루 종일 한 명도 없었지만 이제는 하루에 200여명이 통행하는 시장 골목 중 하나가 됐다”며 “공동체로서 시장이라는 생활 역사의 공간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시장 834곳을 탐사한 시장 기록가이자 청년 사업가다.

광주 1913송정역시장도 시장 회춘 사업 중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하루 1만2,000명이 이용하는 KTX 광주송정역 앞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타고난 이 시장은 지난해 현대카드와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의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로 전국적인 명소로 거듭났다. 중소기업청 조사에 따르면 이전 34.5%에 달하던 공실율은 3월 현재 3.6%로 감소했고 상인 평균연령은 62세에서 47세로 훌쩍 젊어졌다. 하루에 200명에 불과했던 고객 수는 평균 4,000명으로 증가했고 주말에는 6,000명에 달한다.

하지만 전통시장의 청년 상인들은 예산 지원을 받는 대신 성공적인 창업과 신규 소비층 유입을 통한 상권 재건이라는 숙제를 떠안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소상공인 창업 생존율은 1년 후 62.4%, 2년 후 47.5%, 3년 후 38.8%로 떨어진다.

영업하는 점포가 세 곳에 불과했을 정도로 폐허화됐던 전통시장인 증산시장은 '애니컵케이크'와 같은 청년 점포가 들어서며 점차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류효진 기자
영업하는 점포가 세 곳에 불과했을 정도로 폐허화됐던 전통시장인 증산시장은 '애니컵케이크'와 같은 청년 점포가 들어서며 점차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류효진 기자
서울 은평구 증산시장 내에 자리한 애니컵케이크 내부 모습. 류효진 기자
서울 은평구 증산시장 내에 자리한 애니컵케이크 내부 모습. 류효진 기자

전통시장에 봄은 오는가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은 있다. ‘ㅁ’자 구조로 된, 낡은 1층짜리 상가 건물에 주변지역은 재개발 공사에 들어가는 증산시장. 지난해 12월 세 개의 청년 점포가 입점하면서 이제 막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증산시장에서 ‘애니컵케이크’를 운영 중인 조한지 대표는 몇 해 간 컵케이크를 만들어온 베테랑이다. 맛으로 놓고 보면 '매그놀리아' 부럽지 않고 재료도 모두 좋은 것으로만 골라 쓴다. 시장에서 컵케이크를 파는 일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지만 주변 상권을 분석해 초등학교 등 고객을 유입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 나가고 있다. 조 대표는 “세 개 점포만 있는 상황에서 신규 유입 인구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현재까지는 베이킹 재료 온라인 판매에 매출 상당 비율을 의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께 입점한 ‘이웃집 바리스타’나 ‘슬로우 넛’ 역시 비슷한 상황이지만 더 많은 청년 점포가 들어서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변두리 베드타운에 자리한 쇠락한 시장이 변신할 수 있는 기회는 올 11월까지다. 세 점포가 그때까지 버텨주는가도 관건이다.

성동구 뚝도시장 청년 점포인 '크래프트 마켓' 김성현 대표는 같은 시장 내에 크래프트 맥주 전문 펍 '슈가맨'을 동시에 내 함께 운영 중이다. 크래프트 마켓에 오는 맥주 쇼핑객들이 들르는 사랑방이다. 류효진 기자
성동구 뚝도시장 청년 점포인 '크래프트 마켓' 김성현 대표는 같은 시장 내에 크래프트 맥주 전문 펍 '슈가맨'을 동시에 내 함께 운영 중이다. 크래프트 마켓에 오는 맥주 쇼핑객들이 들르는 사랑방이다. 류효진 기자

갓 시작한 증산시장과 반대로 성동구 뚝도시장은 3월을 마지막으로 청년상인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통한 월세 지원이 종료된다. 청년 상인들은 월세 지원이 없더라도 대부분 잔존할 예정이다. 크래프트 맥주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크래프트 마켓’ 김성현 대표는 “구의 지원 덕분에 초기 창업 비용 부담도 덜었고, 오래된 활어시장이라는 역사성에 성수동이 지역명소로 부상하면서 상대적으로 잘 자리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시장과 수입 크래프트 맥주 편집매장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조합이지만 김 대표는 크래프트 마켓 바로 옆 자리에 탭 맥주 전문점 ‘슈가맨’ 2호점을 차렸을 정도로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기존 상인들과 청년상인들, 뚝도시장 청년상인 창업지원 사업단 ‘뚝도청춘’이 잘 연계돼 뚝도시장의 일곱 청년 점포는 각자의 장사뿐 아니라 마을공동체로서 플리마켓 등 주말 이벤트 기획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향후 청년 상인들은 협동조합까지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도시의 일부로서 시장은 지속될 가치가 있다. 시장의 상인이 젊어지고, 그 상인이 파는 물건이 젊어질수록 더 젊고 강력한 소비계층이 시장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긍정적이다. 다만 각지에서 전통시장 회춘 사업이 궤도에 올라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이 때, 익명을 요구한 한 청년 상인의 이야기에도 긴밀히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사업을 취업 전 ‘스펙 쌓기’ 용으로 여기거나, 창업 비용이 상당 부분 지원된다는 이유로 방만하거나 무책임한 태도로 임하는 청년들은 전통시장에 젊은 바람을 불어넣을 수 없습니다. 장사는커녕 아르바이트조차 해보지 않은 무경험자들을 위해 더 현실적인 교육, 컨설팅 체계도 필요합니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사진=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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