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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내 편에 'No' 할 수 있나

입력
2017.03.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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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후보 예약’ 文, 리더십 시험대

'적폐청산' 넘어 ‘사회적 대타협’ 부각

기득권노조 등에 양보ㆍ희생 요구해야

문재인 전 대표가 29일 오후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후보자 충청권역 순회투표에서 47.8%로 1위를 차지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표가 29일 오후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후보자 충청권역 순회투표에서 47.8%로 1위를 차지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오랜 브랜드, '적폐 청산' 슬로건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그 말에 담긴 적대와 배제의 어두운 메시지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뜻과 대상이 분명치 않은 용어를 상대편을 공격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행태가 거북하고 그것 또한 적폐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과거부터 겹겹이 쌓여 온 적폐 탓'으로 돌린 것만 봐도 이 말의 양면성과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상대를 제압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유용한 무기이지만, 언제든 그 칼 끝이 자신을 향해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안희정 캠프가 문 진영을 향해 "적폐청산 1호는 이분법적 진리관, 적폐청산 2호는 문자폭탄"이라고 비난한 것은 한 예다.

호남지역 경선 압승과 충청지역 완승으로 민주당 대선후보를 사실상 '예약'한 김에 집권까지 달려가려는 문 전 대표에게 괜히 시비를 걸거나 발목을 잡으려는 심사는 아니다. 그가 대세이기에 "지역 이념 계층을 뛰어넘는 통합대통령으로 정의가 눈으로 보이고 소리로 들리며 피부로 느껴지는 존중과 희망의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구체적 해법을 보여 달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대세라면, 절대 지지층이 바라는 과거 청소도 중요하지만, 길 잃은 나라를 걱정하는 대다수 국민을 위로하는 미래 청사진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는 희망을 파는 비즈니스라고 하지 않는가.

지난해 초 어느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에 묵시론적 진단을 내려 유명해진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저출산ㆍ고령화와 양극화 등의 중병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의 회복력과 지속가능성을 의심하며 "숙제할 시간이 7~8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여기서 그는 5년 단임제에서의 집권 정치집단을 '유랑도적단'에 비유했다. 미국 경제학자 맨커 올슨에게서 빌린 이 표현에서 그는 "근처에 살면서 계속 훔치며 먹고 살 것 정도는 남기는 일반 도적과 달리, 우리 정치집단은 유랑도적단처럼 한 번 완전히 털고 옮겨가면 그만"이라고 꼬집었다.

당시 그의 인터뷰는 SNS 등에서 수없이 공유되며 온라인을 넓고 길게 달구었다. 좌우를 넘나든 정치집단의 달콤한 말에 숱하게 속아 온 주권자들의 공감과 자각이 배경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장 교수 얘기를 좀 더하면 그는 우리가 직면한 고질적 문제를 풀 유일하고 최종적인 열쇠로 독일과 스웨덴 식의 합의제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전제는 제대로 된 정치 리더십이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정당과 노사단체, 이익집단 등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의 대승적 합의를 끌어내려면 정치부터 바로 서고 정부는 공공성을 앞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가 유일한 처방이라고 강조하는 이른바 '사회적 대타협'이다.

문 캠프는 그래서 적폐청산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안보 장사와 정경유착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시장을 왜곡해 온 기득권 사이비 보수를 청산해야, 협상하고 양보할 공간이 마련된다고. 그러나 간과하는 것이 있다. 우리가 택한 국가주의적 불균등성장 전략과 신자유주의 정책에 편승해 사회 곳곳에 움튼 퇴행적 기득권 집단 말이다. 정권 교체기마다 완력을 과시하며 밥그릇을 확대해 온 공공부문과 대기업 노조는 대표적 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문제의 뿌리는 저성장에 따른 일자리 부족으로 압축된다. 이 대목을 풀려면 자본의 결단 이상으로 기득권 노조가 지배하는 노동시장의 전면 개혁이 필수다. 문 전 대표는 얼마 전 한국노총과 공무원노조총연맹 행사에서 경쟁도 평가도 거부하는 노동계를 마냥 감쌌다. 진보 진영을 지탱해 온 핵심 세력이니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진영에 관대하고 상대에 야박한 행태는 과거 정권이 적폐를 쌓아 온 전형적 방식이다.

내 편에 대해 '노(No)'라고 말하고 '함께'를 앞세워 희생과 양보를 요구할 수 있어야 상대편도 설득할 수 있는 법이다. 누구든 그게 적폐청산 리더십의 실천적 내용이 돼야 한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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