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BC가 MBC스페셜 ‘탄핵’ 편을 불방시키고 담당 PD를 비제작부서로 전출해 논란을 빚은 데 이어, KBS도 지난 5개월간의 촛불 민심을 다룬 KBS스페셜 ‘광장의 기억’ 편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편성 보류해 내부 반발을 사고 있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맞아 공영방송으로서 역사의 현장을 기록해야 할 책무를 지니고 있는데도 이를 무시한 채 시대정신에 역행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KBS PD들에 따르면 KBS스페셜 제작진은 5명의 PD로 자율TF를 구성해 지난해 연말부터 국정농단사태를 다각도로 접근한 프로그램들을 준비해 왔다. 그동안 KBS가 사회 현안들을 제대로 다루지 않아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못했다는 자성과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사전에 간부진과도 협의된 사안이었다. 첫 결과물인 ‘블랙리스트’ 편이 지난달 10일 방영됐고, 박근혜 대통령 파면 다음날인 11일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탄핵’ 편이 전파를 탔다. 내달 방영할 세월호 참사 3주기 다큐멘터리도 준비 중이다. 하지만 5개월간의 취재와 촬영, 편집까지 마친 ‘광장의 기억’ 편은 이달 방영을 목표로 했으나 사측의 반대로 불방 위기에 처해 있다. 일부 간부들이 “이 다큐멘터리가 향후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선거 이후로 방송을 연기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논란이 커지자 KBS는 “촛불 민심은 지난해 11월과 12월, 올해 1월까지 KBS스페셜과 다큐멘터리 3일, 추적 60분, 명견만리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차례 시의성 있게 방송했다”며 “제작진이 방송을 요구하는 ‘광장의 기억’에 대해 제작 책임자가 제작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KBS는 “다만 PD가 역사적 기록과 다른 프로그램에 활용하기 위해 촬영을 요청해 승인했던 사항”이라며 “1월 말 제작진이 기록한 영상을 토대로 방송을 요청해 와 대선이 끝나는 5월 중에 제작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KBS스페셜 제작진은 ‘광장의 기억’과 앞서 방영된 ‘탄핵’ 편이 애초 2부작으로 기획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작 지시를 내린 적 없다”는 사측의 해명이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KBS스페셜 제작진은 ‘광장의 기억’ 편성을 요구하며 제작본부장실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PD들도 “당장 ‘광장의 기억’을 방송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KBS PD협회는 “‘광장의 기억’을 두고 특정 대선후보들에게 유ㆍ불리한 방송으로 예단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국회의 의결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조차 부정하는 행위”라며 “이 방송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파면 당하고 조기 대선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기획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관리자들이 잘 알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도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대통령을 탄핵시킨 것을 되짚어보는 것이 어떻게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럼 뉴스마다 나오는 박근혜 탄핵과 수사 소식은 모두 선거에 영향을 주는 비정상적인 보도인가”라고 반발했다. 아울러 “촛불 광장은 공영방송 종사자라면 반드시 담아야 할 역사의 현장이며 그 의미를 되짚어봐야 하는 최고의 다큐멘터리 소재”라면서 “‘광장의 기억’을 제때 방송하지 않는다면 지난 9년의 KBS 불공정방송 역사 속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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