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헌법재판소 선고장면은 앞으로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이미지다. 예상됐던 일이기는 하지만 막상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이 내려졌을 때 느꼈던 생소함과 대통령이 정말 탄핵됐다는 놀라움. 몇 달을 끌어 왔던 국정농단 사건이 막바지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든 기자로서의 복잡미묘한 감정.
무엇보다 충격은 헌재 앞의 아수라장이었다. 태극기를 흔들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 길가에 주저 앉아 통곡하는 사람, 욕설을 퍼붓는 분노한 사람, 청와대로 가자며 경찰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차벽을 뛰어넘는 사람. 누군가에게 배신ㆍ무능ㆍ부정의 상징이 되는 이가, 그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날 그 자리에서 3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 70대 남성은 경찰버스 탈취 과정에서 떨어진 대형 스피커에 맞아 사망했다. 심장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대통령에게 힘 내라는 말을 하러 청와대로 가다가, 제지하는 경찰과 대치 중에 사망한 60대와 70대도 있었다.
얼마 전 만난 경찰 간부는 이날을 “참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만은 아니었다. 주말마다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의 함성과 이에 맞서 서울광장에 몰려들었던 대통령 지지자들의 분노를 차벽으로 가로막아 ‘큰 충돌 없이 관리했던 성과’에 대한 오점이라는 취지였다. 그는 들뜬 목소리로 “집회 과정에서의 폭력 같은 불상사는 거의 없지 않았나”고 되묻기까지 했다.
정말 경찰에게 ‘집회관리를 잘했다’는 칭찬이 필요한 걸까? 탄핵 전 경찰의 집회관리를 되짚어 보자. 촛불집회 관리에서 경찰 대응은 크게 나무랄 데는 없었다. 그러나 경찰은 탄핵 정국에서 벌어진 보수단체들 시위에 유난히 관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젊은이들이 태극기를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태극기 어르신’에게 폭행을 당하고, 집회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나간 언론사 기자들이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차별 구타를 당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말리는 정도였을 뿐 엄연한 ‘폭행 현행범’을 체포하지 않았다. 헌법재판관이나 특별검사를 향한 인신공격과 협박성 발언이 난무했고, 실제 이들 집 앞에는 야구방망이나 낫 같은 물건들이 등장했는데도, “아직 협박이 실현되지 않았다”며 신중하기만 했다.
당시 경찰총수의 태도는 더욱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는 기자간담회 때마다 “상대방이 고소하면 몰라도 단순 발언으로 수사에 착수하는 건 지나치다”거나 “(수사 여부를)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경찰 스스로 ‘오점’이라고 평가한 3명의 죽음은, 어쩌면 경찰총수의 미온적 태도가 낳은 필연적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랬던 경찰총수는 대통령 탄핵 인용 이후 마치 다른 사람이 된 양, 보수단체 시위 폭력성을 엄단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13일 “폭력 사태를 야기한 지도부를 반드시 입건할 것이고, 엄중히 사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미리부터 보수단체 집회에 강력한 대응을 했다면, 불상사를 미연에 막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경찰은 왜 극적인 변신을 해야 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만에 하나 임면권자가 복귀(탄핵 기각)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임면권자를 지지하는 집회에 강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실제 경찰 밖에서는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청와대의 방패이지 않았냐” “속보이는 태도 변화”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항상 가까이서 경찰에 관한 취재를 하는 입장에서, 경찰의 이런 민낯을 지켜본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경찰은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법과 원칙이 아닌 정권의 힘에 휘둘려야 할 것인가? 저물어 가는 권력에까지 눈치를 보는 경찰은 과연 그토록 염원하던 수사권 독립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여러 가지를 떠오르게 한 경찰청장의 ‘변신’이었다.
남상욱 사회부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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