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시장구경만큼 흥미로운 게 없고, 시장에서 먹거리 빼면 남는 게 없다. 정선아리랑시장은 지역의 특색 있는 먹거리가 가장 풍성한 전통시장이다. 논이 없는 산간지역에서 재배하는 수수, 옥수수, 감자, 메밀 등을 재료로 한 주식과 간식이 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정선군에서 추천하는 지역 음식과 전문식당을 모았다.
건강식으로 변신한 가난의 징표, 곤드레나물밥
곤드레나물은 산간지역 골짜기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다. 공식 명칭은 고려엉겅퀴. 곤드레나물밥은 쌀 위에 고려엉겅퀴의 어린 잎을 얹어서 지은 밥이다. 나물밥은 적은 양의 곡물로도 든든히 배를 채울 수 있는 조리방식. 지금이야 건강식이자 별미지만 곤드레나물밥도 가난의 징표였던 셈이다.
동박골 식당은 곤드레밥(6,000원)과 돌솥곤드레밥(7,000원), 밑반찬을 더한 돌솥곤드레밥 정식(9,000원)이 주 메뉴다. 나물밥을 비벼먹을 수 있도록 3가지 장이 나온다. 조선간장과 왜간장을 적당히 섞은 양념간장, 자작하면서도 심심하게 끓여 낸 된장찌개, 채소를 찍어먹어도 좋은 막장 등을 식성에 따라 비벼먹는다. 정식에는 묵무침, 곤드레전, 두부부침 등 10여 가지 반찬이 나오지만 3가지 장만 있어도 충분할 정도다.
가장 ‘정선스러운’ 수수부꾸미와 메밀전병
배추를 주재료로 전을 부치는 메밀부침
정선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간식이 수수부꾸미와 메밀전병이다. 수수부꾸미는 수수반죽을 호떡처럼 솥뚜껑 프라이팬에 부친 후, 팥소를 넣어 만두처럼 접은 음식이다. 메밀전병은 메밀반죽으로 얇게 전을 부친 후 양념한 절인 배추를 넣고 말아서 만든다. 배추를 주재료로 전을 부친 메밀부침도 정선을 비롯한 강원 산간지역 고유 음식이다.
시장 먹거리골목의 회동집에서 모듬전(5,000원)을 시키면 수수부꾸미, 메밀전병, 메밀부침에 녹두전까지 골고루 맛볼 수 있다. 이 집은 수수부꾸미에 단맛이 강한 팥소 대신 녹두 소를 넣는다. 이 외에 메밀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만든 콧등치기국수, 옥수수가루 반죽으로 올챙이처럼 가락을 뽑은 올챙이국수 등 정선의 대표 간식을 거의 모두 판매한다.
강원도는 감자, 감자옹심이와 감자전
감자옹심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강원도 먹거리다. 재료는 감자 하나지만 만드는 방법은 다소 복잡하다. 먼저 생감자를 강판에 갈아 보자기에 짜서 전분을 가라앉힌다. 이 앙금을 보자기의 감자와 섞어서 팥죽에 넣는 새알심처럼 동그랗게 만든 게 감자옹심이다. 이를 끓이면 옹심이는 한결 윤이 나고 전분이 배어 나온 국물은 수제비처럼 걸쭉해진다. 감자전과 황기막걸리를 곁들이면 제격이다.
옹심이네 식당의 감자옹심이(8,000원)에는 콧등치기국수가 함께 들어간다. 국수를 뺀 감자옹심이(9,000원)만 맛보려면 미리 말해야 한다.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만든 칼국수인 가수기(7,000원), 가난하던 시절 메밀쌀에 나물, 두부, 콩나물 등을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인 메밀국죽(8,000원)도 판매한다.
약초의 고장답게 황기족발과 수리취떡
정선아리랑시장에서 곤드레, 곰취, 다래순 등 말린 나물 다음으로 흔한 것이 황기, 더덕, 상황버섯, 야관문, 부처손 등 한약재다. 그 중에서도 황기는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 닭백숙에 넣는 보양식재료로 이용하는데, 정선에서는 황기를 넣어 삶은 황기족발이 유명하다. 정선역 인근 동광식당은 황기족발만 전문으로 한다. 약초 향이 은은할 뿐만 아니라 육질도 부드러워 살코기 부분은 손으로 찢어서 담는다. 가격은 3만2,000~3만5,000원.
약재는 아니지만 수리취의 연한 잎을 섞은 수리취떡도 대표간식이다. 쑥, 모시와 마찬가지로 수리취도 잎 뒷면에 연한 솜털이 있어 흰빛을 띤다. 쑥떡처럼 향이 강하지는 않지만 섬유질이 풍부해 먹기에 부담이 없다. 시장 내 민둥산수리취떡 가게에서 팥소를 넣은 찹쌀떡, 동부콩고물로 버무린 인절미, 밤 한 톨을 통째로 넣은 송편 등을 판매한다.
정선=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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