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와 애증의 13년
박, 삼고초려 끝 비서실장 발탁
‘청와대 얼라’ 발언 후 고난의 길
“유승민 정치자산 8할이 핍박”
정치인 유승민을 이루는 뼈대는 ‘보수’와 ‘개혁’이다. 여기에 ‘박근혜’라는 살이 붙으면서 정치 브랜드를 완성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그에게 시련과 도전이었다.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자로 찍히고 공천 배제를 당하는 수모 끝에 탈당과 창당을 결행했고 짧은 기간 대선주자급으로 압축 성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13년 애증
경제학자 유승민을 정치로 이끈 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87년부터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한 42세의 유 의원을 당시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으로 파격 기용했다.
그런 유승민 의원을 바른정당 대선 후보로 이끈 결정적 인물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2004년 비례대표로 초선 배지를 단 그를 당시 박근혜 당 대표가 삼고초려 끝에 이듬해 자신의 비서실장으로 앉혔다. 질긴 인연의 시작이다. 이어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박근혜캠프 정책메시지 총괄단장,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중앙선대위 부위원장을 맡았다.
유 후보가 정치적 입지를 다진 때는 2011년 당 대표 출마 때다. 스스로 ‘용감한 개혁’이라고 이름 붙인 출사표를 던지고 2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박근혜 후광’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유 후보에게 심리적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단초는 자신을 비판한 유 후보의 언론 인터뷰였다. 유 후보의 한 측근은 “여기다 2014년 외교부 국정감사 때 유 후보의 ‘청와대 얼라들’ 질타가 결정타였다”고 전했다.
2015년 원내대표 경선에서 ‘자력’ 당선된 유 후보의 독립을 박 전 대통령은 가만 두지 않았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로 대표되는 그의 교섭단체대표 연설, 국회의 행정부 견제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합의를 빌미로 그를 ‘배신의 정치인’으로 몰았다. 청와대와 친박계가 전횡한 지난해 총선 공천 당시 그의 측근 의원들은 모두 낙천했고, 벼랑 끝에 몰린 유 후보도 탈당에 이르렀다. 복당 뒤의 시간도 순탄치 않았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처리를 둘러싼 당내 전선을 발단으로 ‘친박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을 ‘가짜 보수’로 낙인 찍고 또다시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다.
# TK서 외면받는 TK의 아들
경제 개혁적, 안보엔 ‘꼴통 보수’
보수층도 ‘그 밥에 그 나물’ 취급
낮은 지지율 극복이 최대 과제로
TK의 적자… TK가 외면
17년 정치인생 동안 박 전 대통령에게 맞서 고난을 겪은 것 외에 스스로 만든 궤적이 무엇인가. 유 후보를 따라다니는 질문이다. 정치권에선 그래서 “유승민의 정치자산 8할이 핍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박 전 대통령에게 박해를 받으면서 그의 지지율은 훌쩍 올랐다. 유 후보는 그러나 “그간 나만큼 박 전 대통령에 맞서 바른 소리를 한 사람이 있었느냐”고 항변한다. 그는 2015년 박 전 대통령의 낙인으로 원내대표직 사퇴 위기에 몰렸을 당시 “한 회사원에게서 원내대표가 아니라 ‘미생 대표’가 돼 끝까지 싸워달라는 편지를 받았다. 제 인생을 많이 바꾼 시기”(25일 수도권 정책토론회)라고 말했다. 정치인으로서 2막을 연 계기였다.
하지만 현실은 척박하다. 여전히 ‘그 밥에 그 나물’로 보는 시각이 있어 지지율이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TK(대구ㆍ경북)의 적자’를 자부했지만 지역에서조차 박근혜의 ‘콘크리트 지지층’에 밀려 외면 받고 있다. 그가 박 전 대통령의 불구속 수사를 주장하고, “모든 사법절차를 다 거치도록 하되 사면 여부는 국민의 의견을 물어 결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도 TK를 의식한 탓이란 해석이 나온다. 그래도 그는 “지금부터 쌓아 올리는 지지율이 진짜”(25일 수도권 정책토론회)라고 투지를 다졌다.
‘금수저’란 지적도 그를 뒤따른다. 유 후보의 부친은 유수호 전 의원으로 부산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법관 출신이나, 박정희 정권에 밉보인 죄로 법복을 벗었다. 이후 대구 중구에서 13ㆍ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부친과 유 후보가 결과적으론 박정희ㆍ박근혜 정권과 2대에 걸쳐 악연이 있는 셈이다. 유 후보는 자신이 ‘금수저’임을 부인하진 않지만 “보수당에서 제일 개혁적이고 서민을 위한 정책을 일관되게 펴고 있다”고 반박한다. 중요한 건 출신이 아니라 정책이라는 것이다. 딸 담씨의 통장에 1억 8,000만원의 예금을 보유해 일었던 비판도 금수저 논란의 연장선이다. 그는 “직계가족끼리 차명이 허용될 때 (통장을) 딸 이름으로 해놓았다”며 “모두 제 불찰로, 증여세 2,700만원을 냈다”고 덧붙였다.
기울어진 대선판에 선 개혁보수
유 후보는 안보는 보수, 그 외의 분야는 개혁 성향이다. 특히 안보는 ‘꼴통보수’로까지 불린다. 2013년부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주장을 했고, 야권의 유력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향해선 ‘안보가 불안한 후보’라고 공격하고 있다. 유 후보는 “안보냐 경제냐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안보다. 경제는 살리면 되지만, 안보는 상실하면 끝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면, 경제는 KDI 연구위원 시절부터 일관된 개혁노선이다. 1995년 한 세미나에서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과 소유 집중, 그룹식 경영으로 국민경제의 전반적인 집중현상이 계속 심화되는 것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공개 비판한 게 한 예다. 김대중 정부 때는 재벌 간 빅딜은 잘못된 재벌 정책의 전형이라고 비판하다 KDI에서 감봉을 받기도 했다. 정치 입문 이후에도 ‘나누면서 커가는 따뜻한 공동체’를 내세워 수구 보수와 차별화를 꾀했다.
그러나 진보 쪽으로 기운 대선판에서는 그 때문에 오히려 설 자리가 없어졌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이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생긴 보수의 공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대선 레이스의 출발선에 섰지만, 그에겐 지금부터가 진짜다. 무엇보다 이율배반적 이미지를 불식하고 건전 보수를 농락한 가짜 보수를 극복할 보수의 유일한 대안이 자신임을 설득하는 게 그의 숙제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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