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 침체 미분양 우려에
건설사들 매력적인 조건 내걸자
청약경쟁률 228:1까지 치솟아
민간은 분양원가 공개 안 되고
소송에서 다퉈 이기기 어려워
“다른 분양 아파트와 비교 필요”
서울 동작구에 사는 직장인 윤모(41)씨는 최근 평택 고덕국제신도시에 분양한 고덕 파라곤에 청약을 넣었다가 경쟁률을 보고 깜짝 놀랐다. 597가구를 모집하는 1순위 청약에 2만9,485명이 지원해 평균 49.38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71㎡형에서는 경쟁률이 380.14대1까지 치솟기도 했다. 윤씨는 “삼성전자 고덕산업단지 개발과 수서발 고속철(SRT) 지제역 개통 등 호재가 크고, 중도금 무이자 혜택까지 갖춰 인기를 끈 것 같다”고 말했다.
11ㆍ3 부동산 대책 이후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자 중도금 대출 무이자 조건을 내건 분양단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중도금 대출 금리가 연 4~5%까지 올라 청약 수요자들의 심리적 저항감이 커진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 차기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 전망 등에 미분양 우려가 커지자 건설사들이 접어뒀던 중도금 대출 무이자 카드를 다시 꺼내고 있다. 그러나 중도금 대출 이자 비용을 분양가에 포함시키는 ‘꼼수’가 가능해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28일 금융결제원이 운영하는 인터넷청약사이트 아파트투유에 따르면 올 들어 가장 높은 청약경쟁률을 기록한 단지는 부산 연지 꿈에그린(228.28대 1)이었다. 해운대롯데캐슬스타(57.94대 1) 평택고덕파라곤(49.38대 1) 전포유림노르웨이숲(47.90대 1) 속초서희스타힐스더베이(27.95대 1)가 그 뒤를 이었다. 이들 5개 단지의 공통점은 모두 중도금 대출 무이자 혜택을 분양조건으로 내걸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계약자는 분양가의 10%를 계약금으로 넣고, 중도금 60%를 4~6회 나눠 낸 뒤 입주시점에 잔금 30%를 납부한다. 중도금 대출 무이자 조건은 전체 분양금액의 절반 이상인 중도금을 계약자가 대출받아야 할 경우 이자비용을 건설사가 대신 내준다는 뜻이다. 계약금만 내면 입주할 때까지 금전적인 부담이 없고, 이자비용을 아낄 수 있어 아파트 계약자에겐 매력적인 조건이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미분양 우려를 떨칠 수 있다. 대우건설이 경기 평택시 용죽도시개발사업지구 A2-1블록에 분양 중인 ‘비전 레이크 푸르지오’와 인천 중산동 영종하늘도시에 들어설 대림산업의 ‘e편한세상 영종하늘도시 2차’가 중도금 대출 무이자를 분양조건으로 내건 이유다. 중견건설사인 호반건설의 ‘김포한강신도시 호반베르디움’(2ㆍ3ㆍ5차)과 금성백조주택이 충남 보령시 명천지구 3블록에 짓는 ‘보령예미지’도 마찬가지다. 윤지해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선임연구원은 “이자부담이 높아진 만큼 비슷한 입지의 아파트라면 중도금 대출 무이자를 조건으로 내건 단지에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며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은 만큼 중도금 대출 무이자를 앞세운 분양단지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 경기 불황에도 오는 4~6월 전국에 예정된 아파트 분양물량은 12만1,030가구나 된다. 부동산 호황기였던 2014년 4~6월(10만129가구)보다 많은 수준이다.
그러나 중도금 대출 무이자 조건만 믿고 덜컥 계약했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민간분양의 경우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제도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건설사가 중도금 대출 이자비용을 분양가에 전가해도 계약자는 알 길이 없다는 뜻이다. 소송으로 다투기도 어렵다. 앞서 2015년 3월 대우건설이 지은 세종시의 한 아파트 입주자 495명은 “중도금 무이자 혜택이 조건이었지만 분양가에 중도금 대출 이자 비용이 포함돼 있음을 담당자를 통해 확인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법원은 “대우건설이 내건 분양광고는 ‘중도금 전액 무이자 융자’라는 단 네 단어”라며 “그 안에 중도금 이자가 분양대금에 포함되지 않은 완전 무상이란 뜻까지 담겨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대우건설의 손을 들어줬다. 윤 선임연구원은 “중도금 대출 이자를 분양가에 전가시킬 경우 분양가격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며 “중도금 대출 무이자 조건을 내건 단지의 분양가가 비슷한 입지의 다른 아파트와 비교해 합리적인 수준인지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