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인한 물 위기와 자연재해는 국제사회의 핵심 이슈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매년 ‘글로벌 리스크’를 발표하고 있는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포럼)의 올해 보고서에 의하면 극단적 기상이변(Extreme weather events)과 자연재해(Natural disasters)가 발생가능성과 영향력 면에서 최상위권에 선정되었다. 아울러 ‘물위기(Water crisis)’는 해마다 빠짐없이 수위(首位)를 다투는 리스크 중 하나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집중호우, 가뭄 등 우리나라의 물 문제도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2015년 극심한 가뭄을 경험했던 충남서부지역이 올해도 보령댐 저수율이 예년대비 42% 수준에 불과하여 가뭄 위협에 시달린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가뭄의 상시화를 전제로 한 수자원 관리가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처리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물을 체계적·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은 OECD 국가 중에서도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 환경부, 농림부 등 관련 부처가 물관리를 단편적으로 담당하고, 유역이 아닌 행정구역별로 하천 관리가 제각각 이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 4대강 사업에서 보듯이 수량과 수질조차 통합적으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취수원 오염이나 물 배분에 관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이 어려워진다. 분산되고 다원화된 물 관리는 자연스럽게 예산, 투자, 계획 등의 중복으로 인한 비효율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제19대 국회에 ‘물 개혁 포럼’, ‘국회 스마트 물포럼’ 등을 구성해 물 관련 전문가들과 시민단체, 정치권이 합심해 우리나라 물관리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20대 국회에서는 물관리기본법이 7건이나 발의되었고, 이 법안들에 서명한 의원만도 100명이 넘어서면서 이제 입법여론이 성숙했다는 점은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발의된 7건의 물관리기본법은 공통적으로 갈등이 많은 물관리 부처의 통합보다는 국가물관리위원회를 설치해 부처들이 고유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국가물관리위원회가 일종의 컨트롤타워로서 물관리 계획을 종합적으로 수립하고 통합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부처를 통합하는 경우 발생하는 갈등을 최소화하고 각 부처의 고유기능인 국토부의 수량관리 및 수자원개발의 역할과 환경부의 수질에 대한 감시 및 규제 기능을 인정하면서 국가적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수자원을 관리하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하나의 하천, 하나의 계획(One Watershed, One Plan)’을 물관리 정책의 모토로 국가 차원 혹은 유역 차원의 통합적인 물관리로 이행했으며, 이를 위해 물에 관한 기본법을 제정했다. 일본에서도 물관리기본법에 대한 논의를 우리보다 10여 년 늦게 시작하였지만 2014년 4월에 ‘물순환기본법’을 제정하고 부처별로 분산된 물관리를 통합·조정하기 위해 총리실 산하에 물순환정책본부를 설치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물의 위기는 거버넌스의 위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물에 대하여 이해관계를 가지는 관리주체뿐만 아니라 물소비자인 국민과 지역주민, 관련 시민단체 간의 협치를 실현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물관리의 핵심과제라는 의미인 것이다. 국토부와 환경부 간의 업무 영역을 둘러싼 논쟁에 매몰돼 시간을 지체하는 동안 물의 위기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오히려 국토부는 하천관리에, 환경부는 규제와 감시에 집중하는 등 관련부처가 고유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상호 협력하여 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부처 간 갈등을 넘어 물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제20대 국회는 물 문제가 국가 차원의 비상사태로까지 커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물관리기본법을 제정하는 입법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국민의 생존을 담보하는 물안보를 수호하는 헌법적 의무를 방기한 채 관련부처가 소아적 권한에 집착하는 것은 명분도 없으며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물 관리에 대한 제도적 기반을 탄탄히 하여 물 관련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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